소상공인 "정치 논리에 직격탄"
온누리 예산확대 '형평성 논란'
"정부, 민생ㆍ상생 의지 없다" 비판
내년도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국비 지원 전액 삭감을 두고 현장에선 이번 예산안이 대안 없이 이뤄졌다고 보고 있다. 사실상 소상공인을 무시하다는 처사라는 맹비난이 나온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지역 내 학원과 소규모 마트에서 지역화폐가 많이 사용되는데 사실상 마을 공동체를 살리는 역할을 한다고 봐야 한다”며 “자본이 한 쪽으로 쏠리지 않게 하는 사회안전망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런 골목상권의 효과를 감안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지방세연구원이 낸 ‘지역사랑상품권이 소비자 구매 행태 및 지출 규모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경기·인천 주민의 BC카드·지역사랑상품권 결제 자료 분석 결과 지역화폐의 사용으로 대형유통업 결제액이 차지하는 비중이 감소하고, 소비자 구매처가 소상공인·자영업자가 운영하는 업체로 유도되는 경향을 나타냈다. 소비자의 지출 규모가 증가하지는 않았지만 대형 할인점에서 구매하던 물품 일부를 동네 슈퍼마켓에서 대체 구매하는 소비 행태를 보였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지역화폐의 예산 감액은 어느 정도 예견됐던 사안이다. 문재인 정부도 올해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지역화폐 예산을 2403억 원으로 전년(1조2522억 원)대비 대폭 줄였다. 세수 증대로 인해 지방 재정에 여유가 이유였다. 그러나 국회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증액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면서 6000억 원 수준으로 증액됐다.
현 정부는 이번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국고지원 정상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지역화폐 사업을 사실상 살포성 재정사업으로 평가했다. 또 지역화폐 지원 자체가 3년 한시 사업이고,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로 추가 지원을 할 필요성이 줄었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김완섭 기재부 예산실장은 2023년 예산안 발표 브리핑 당시 “지역화폐는 효과가 특정 지역에 한정되는 온전한 지역사업”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한 해 예산이 6000억 원이 넘던 사업을 하루아침에 전액 삭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소상공인업계 관계자는 “올해 시장 유통액이 무려 26조 원으로 추산될 정도로 규모가 크고 익숙해진 시장”이라며 “코로나19에서 아직 회복하지 못한 소상공인들을 지원해야 하는 시점에 정치논리를 적용해 직격탄을 맞게 한 것으로 현장에선 보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시장에선 전국 지역화폐 발행 규모를 지난해 22조 원에서 올해 30조 원 수준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성원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한상총련) 사무총장도 “최근 편의점업계를 조사한 결과, 월매출의 평균 10%, 많게는 15%를 지역화폐가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특히 최근 결제횟수가 늘었는데 사용자가 그만큼 증가했다는 의미로 보고 있다”고 부연했다. 서울 성북구의 성북사랑상품권의 경우만 봐도 지난해 모두 5차에 걸쳐 발행됐다. 발행 규모는 590억 원에 달한다. 사용률도 93%로 550억 원을 넘었다.올해 1차 발행액(180억 원)의 유통액도 86%에 달한다.
예산 삭감의 기준도 문제로 제기된다. 정부는 지자체가 발행사업인 지역화폐는 0원으로 책정한 반면 정부가 발행하는 온누리상품권 예산은 대폭 확대한다. 두 사업 모두 세금 지원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점에서 형평성 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예산안 책정 전에 중기부가 행안부 측에 소상공인들이 지역화폐에 대한 선호가 높고, 혜택을 많이 봐온 것으로 안다는 의견을 전달했지만 예산안 집행 과정에 중기부 의견만 반영되는 건 아니다”라면서 “온누리상품권은 올해 3조5000억 원에서 내년에 4조 원으로 예산이 확대된다”고 말했다. 중기부는 최근 카드형 온누리상품권을 신규 출시했다. 카드형 상품권은 올해 1조 원 규모로 발행되고, 내년에 발행 규모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온누리상품권은 지역화폐 대비 사용처가 현저히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작년 9월 기준 지역화폐의 가맹점은 235만370곳이었던 반면 온누리상품권 가맹점은 19만6901곳의 10%도 되지 않았다.
특히 소상공인들은 정부가 최근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를 시도한 데 이어 이번 지역화폐 예산마저 삭감하면서 골목상권 보호와 상생 정책을 펼 의지가 사실상 없다고 해석하는 분위기다. 서울의 한 전통시장 상인회장은 “민생 취우선이라고 하는데 피부에 와닿는 정책은 없다”며 “현장 소상공인들은 부글부글 끓는 상황”이라며 막막함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