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펀드 손실로 고민 중인 손정의, ARM으로 돌파구 찾나
삼성, ARM 핵심 기술 이용해 시스템 반도체 선두 노리나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다음 달 3년 만에 한국을 찾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만난다. 22일(현지시간) CNBC방송에 따르면 손 회장은 이때 소프트뱅크그룹이 2016년 인수한 영국 반도체 설계회사 ARM(암)과 삼성전자 간 전략적 제휴에 관해 논의할 계획이다.
손 회장은 성명에서 “3년 만의 방한에 기대가 크다”며 “삼성과 ARM 간 전략적 제휴에 관해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더 구체적인 사안은 언급하지 않았다.
얼마 전 손 회장이 새 비전펀드 출범을 구상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당시 신규 펀드의 자금줄로도 여겨졌던 ARM이다. 그가 몇 년 만에 한국을 찾아 ARM 세일즈에 나선 속사정은 무엇일까.
현재 손 회장은 현금이 절실한 상황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소프트뱅크의 주력 투자펀드인 비전펀드의 막대한 손실 때문이다. 비전펀드는 소프트뱅크가 2017년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국부펀드 등과 함께 1000억 달러(약 139조 원)를 투자해 만든 기술펀드다.
비전펀드1은 위워크, 디디추싱 등 글로벌 신흥 정보기술(IT) 강자에 과감하게 투자하며 수익을 냈으나 글로벌 증시 추락, 중국 규제 강화 등 여파로 초반 수익이 상쇄됐다. 인공지능(AI)에 초점을 맞춘 비전펀드2도 지금까지 약 19%의 손실을 보고 있다.
그 여파로 소프트뱅크는 올해 회계 1분기(4~6월) 230억 달러라는 사상 최대 순손실을 내며 2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이에 소프트뱅크는 경영진 급여를 삭감하고 우버와 알리바바 등 지분을 매각하며 손실을 메우고 있지만 역부족인 상태다.
영국 케임브리지에 본사를 둔 ARM은 ‘스마트 두뇌’라 불리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반도체 설계의 핵심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다. 삼성전자와 애플, 퀄컴 등이 제작하는 모바일 AP 대부분이 ARM의 기본 설계도를 사용한다.
손 회장도 미래 기술의 핵심 사업으로 새 성장 동력을 얻겠다며 2016년 320억 달러에 ARM을 인수했다.
삼성전자 입장에선 핵심 기술을 보유한 ARM 인수가 기술적 우위를 제고할 기회인 셈이다. ARM의 사업 모델은 오픈형 라이선스로 삼성전자는 물론 인텔 등 다른 경쟁사들도 라이선스 구입을 통해 ARM의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ARM이 이전부터 삼성전자의 유력한 인수합병 대상 후보로 거론돼 온 이유이기도 하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에 이어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선두를 노리고 있다. 파운드리 기업인 삼성전자가 ARM과 같은 팹리스 기업을 인수하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해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단독 인수 가능성은 낮게 점쳐지고 있다. 각국의 독과점 규제가 엄격한 데다 삼성전자가 ARM의 소수지분을 취득해 전략적 협력 관계를 강화하거나 다른 기업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동 인수를 추진하는 방법도 있기 때문이다.
ARM을 노리는 반도체 기업들은 삼성전자뿐만이 아니다. SK하이닉스와 미국 반도체 기업 퀄컴 등도 ARM에 관심을 보였다.
3월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전략적 투자자들과 함께 컨소시엄으로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언급했다.
크리스티아노 아몬 퀄컴 최고경영자(CEO)도 올해 초 “퀄컴은 ARM에 투자하는 데 관심이 있는 회사”라고 밝혔다.
2020년 9월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도 400억 달러에 ARM을 인수하려 했으나 각국 규제 당국의 독점을 우려한 반대로 무산됐다.
ARM의 작년 매출은 27억 달러로 전년 대비 35% 늘었다. 소프트뱅크는 지난 6월 ARM의 상장 계획을 발표하면서 ARM의 시장가치가 최소 600억 달러라고 추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