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SF액션영화... 다음 달 12일 개봉
탈세를 의심하는 까탈스러운 세무 조사관(제이미 리 커티스)에게 혹독하게 시달리는 것도 모자라, 마음씨 착한 것 딱 하나만 보고 결혼한 남편(키 호이 콴)은 이혼 서류를 준비했다. 매사에 반항적인 딸(스테파니 수)은 여자친구를 데려와 가족 파티에 소개하려 한다.
적당히 포기하고, 조금씩 실패하고. 그러다 보니 어쩐지 성에 차지 않은 인생만 남은 듯한 중년의 에블린에게 믿기 어려운 다중우주의 세계가 찾아든다. 지난 29일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베일을 벗은 양자경 주연의 할리우드 SF액션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이야기다.
에블린은 수천만 개의 서로 다른 우주 안에서 과거 자신의 선택 하나로 달라질 수 있었던 수많은 인생을 목격한다. ‘다른 세계의 나’가 지닌 능력을 현생으로 추출해온 그는 거대 악과 한 판 액션 대결을 펼친 뒤, 끝내 승리한다.
북미에서는 이미 유명세를 크게 떨친 작품이다. R등급(17세미만 보호자동반 관람가)으로 관객층이 한정돼 있었고, 개봉 첫날 상영관도 고작 10개에 불과했지만 입소문 끝에 6900만 달러(약 1조 원)의 매출을 올리며 흥행했다. 덕분에 실력파 제작사로 손꼽히는 A24도 역대 최고 성적을 경신했다.
평단의 반응도 우호적이었다. 개봉 반 년이 지난 지금까지 미국의 영화 비평 사이트 로튼토마토의 신선도지수는 95%를 유지 중이다. 344개의 평론가 리뷰를 통해 얻어낸 성적이다. 상대적으로 점수가 박한 편인 메타크리틱에서도 81점을 유지하며 준수한 평가를 받았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흥행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제작진이 화려하다. 마블 시리즈 성공의 정점을 찍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어벤져스: 엔드 게임'을 연출한 루소 형제가 제작을 맡았다. 다중우주를 오가는 히어로를 다루는 연습을 이미 충분히 한 이들이 영화의 조타수가 됐다.
연출은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가 공동으로 맡았다. 국내에 이름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소위 화장실 유머로 점철된 ‘스위스 아미 맨’(2016)으로 호흡을 맞추면서 B급을 지향하는 방향성을 확실히 드러냈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 색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홍콩의 쿵푸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액션 신은 ‘순한 맛’일 뿐이다. 뜬금없이 핫도그가 돼 버리는 너덜너덜한 손가락, 애니메이션 ‘라따뚜이’를 모티브로 한 요리사와 너구리, 대망의 무기로 등장하는 출렁이는 딜도까지. ‘양자경이 이런 영화에?’ 싶을 정도로 파격적인 요소가 수도 없이 배치됐다.
양자경은 이 모든 튀는 연출에서도 중심을 잡는다. ‘예스 마담’(1985)으로 스타가 된 그는 ‘007 네버 다이’(1998), ‘와호장룡’(2000)을 거치며 일찍이 전형적이지 않은 액션 요소가 줄 수 있는 장르적 즐거움을 체득했다. 2010년대 이후에는 아웅산 수치 여사를 연기한 ‘더 레이디’(2012)와 싱가포르 부유층을 연기한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2018)을 통해 인물의 서사를 확고하게 드러내는 깊은 접근을 보여줬다.
속사포처럼 이어지는 대사와 빠르게 편집되는 장면들, K팝 스타 못지 않은 차림새로 등장하는 빌런, 신종 팝아트처럼 낯설게 퍼져 나가는 영상의 향연도 빼놓을 수 없는 즐길 거리다.
그 기묘하고 황홀한 조합 끝에, 영화는 보편적인 설득력을 확보한다. 이민 1세대 부모와 2세대 자녀 사이에 불거지는 갈등, 지금의 삶에 불만족스러운 평범한 군상들의 고민, 가장 소중한 존재들 덕분에 끝없는 허무로부터 구원받는다는 희망적인 메시지까지 폭 넓게 끌어안는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다음 달 12일 개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39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