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을 지나는 모든 기차가 목을 축이던 급수탑. 현재 풍기 급수탑은 커다란 풍기인삼이 그려져 있으며, 내부는 영주시의 홍보관으로 쓰이고 있다. 현재의 역사는 1988년 준공됐지만 2012년 리모델링으로 새롭게 단장된 모습이다. 같은 해 역사에는 야외무대와 쉼터, 객차 휴게실과 증기기관차가 자리 잡으며 에코 스테이션으로 꾸며져 새로운 문화휴식공간으로 역할하기도 했다. 이 901호 증기기관차는 우리나라 마지막 증기기관차로 과거 문경역에 있던 것을 옮긴 것이다.
영주지역은 예로부터 한국 최초의 서원, 소수서원이 자리한 성리학의 고향이었다. 1541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최초로 도입한 유학자 안향을 배향하는 사당을 설립했다. 당시 소수서원(백록동서원)이 위치한 순흥은 한때 강원 영월에서 경북 예천을 아우르던 행정의 중심으로 민가로서는 가장 호사스러운 아흔아홉 칸 저택이 수두룩하고, 이에 딸린 행랑채가 끝이 없어서 줄행랑이란 말이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이런 이유로 일제강점기에는 풍기지역이 ‘정감록’에 나오는 수선지로 알려져 전국 8도의 이주민이 모여들었는데, 1913년 채기중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몰려든 인사들이 결성한 것이 바로 대한광복회의 전신 풍기광복단이다. 대한독립과 독립을 위해 죽음으로써 결의하였던 민족열사들의 고향이 바로 풍기인 것이다.
약 80여 개의 인삼가게가 밀집해 있는 풍기역 앞 풍기인삼시장. 주세붕이 소백산의 산삼 씨앗을 금계리에 뿌리면서 시작되었다는 풍기인삼은 그 향부터 남달라 풍기인삼을 담았던 종이에서 몇 달이 지나도 그 인삼 내가 지워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오랫동안 풍기인삼이 전국으로 퍼져나가는 중심 역할을 했던 역사 내부에서부터 인삼의 향기가 가득하다.
인삼 향을 따라 길을 걷다보면 1960~80년대 풍의 나지막한 근대 가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바로 관사촌이다. 옛 풍기역 역무원들이 살았던 낡고 오래된 가옥들의 골목길 정취. 기와를 얹은 지붕과 다다미방, 굴뚝의 형태가 그대로 남은 골목의 모습은 풍기의 옛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오늘날 풍기에는 매년 풍기인삼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축제가 벌어질 뿐만 아니라 풍기인삼의 발전 과정을 직접 볼 수 있는 풍기인삼박물관을 통해 재미있는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자료=국가철도공단 ‘한국의 철도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