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영 크로스커처 대표
평화협정은 대한민국과 북한의 명운이 걸린 중요한 어젠다였다. 그로부터 1년 후 개봉된 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은 민족의 비원이 무산된 역사적 팩트를 되돌려, 가정화법으로 환치하여 서사의 상상력을 펼친 서글픈 판타지 무비다.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현실을 모사하려는 노력이 무색하게 스토리는 엇박자를 냈다.
트럼프를 연상시키는 미국 대통령의 이미지는 과도하게 가볍고 경망스럽게 표현됐고, 김정은 역할의 김 위원장은 지나치게 유약하거나 존재감이 없어 뜨악했으며, 한국의 대통령은 매우 잘생긴 데다 나라를 제 몸보다 더 생각해서 몰입하기 어려웠다.
다만 지정학적 운명으로 눈치만 발달한 우리나라의 생존 전략을 심해 잠수함에 갇힌 3국 정상들의 블랙코미디를 통해 적나라하게 표현해내는 데는 일정 부분 성공했다. 패권 국가인 중국과 러시아를 머리에 이고 있고, 적대적이며 호전적인 핵 보유 국가인 북한이 지척에 있으며, 우리를 식민지로 삼았던 일본은 발 밑에 있다. 세계 최강국 미국은 자국 이기주의를 위해 한반도를 최대한 활용한다. 이런 와중에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의 성장은 차라리 기적에 가깝다.
분단 당사국인 남북이 아무런 결정권을 가질 수 없이, 미·중 갈등과 일본의 견제에 놓여 있다는 리얼리티는 이 영화가 도달하고 싶은 무기력한 실존의 토로이다.
남북문제를 소재로 한 웹툰 ‘스틸레인’을 시작으로 남북 당사자 간의 정상회담을 통해 평화공존을 보여주려 했던 양우석 감독의 노력은 ‘강철비2’에서도 여전했다.
한반도의 운명을 누가 결정하는가? 영화의 훈훈한 결말처럼 분단과 대결을 우리 의지로 종식시켜 평화로 갈 가능성은 정녕 없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