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25년] 유일호 “과거 위기보다 해결 더 어려워...긴축 결심·법인세 인하 필요”

입력 2022-10-24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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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호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인터뷰
"IMF 외환위기 수준으로 가지 않게 정부가 방어할 듯"
"한은 기준금리 인상, 지금보다 더 하기는 어려울 듯"
"필요하면 쓰는 게 재정이지만 지금은 어려워"
"포퓰리즘 경계하는 긴축 재정 불가피"

▲유일호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8일 서울 종로구 소재 복합문화공간인 ‘인사동 코트(KOTE)’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1997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만큼 심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위기를 해결하고 헤쳐나가는 난이도는 지금이 더 어려운 게 분명하다. 금리 인상 등 고통 감내의 시간이 왔다.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장관은 18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가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위기의 징후로 봐서는 2008년 못지 않게 힘들어 보인다. 상황을 타개할 국제 공조는 더 어려운 상황이 됐다”며 이같이 진단했다. 각국이 ‘각자도생’으로 대안을 찾는 상황에서 단행된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도 “최선은 아니지만 불가피한 조치였다”며 법인세 인하로 기업들의 위기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기적 불황 차원 아니었다…‘심각한 위기’”

유 전 부총리는 박근혜 정부의 후반기 경제 정책을 이끄는 경제 사령탑으로 있었던 인물이다. 18·19대 국회의원과 박근혜 정부 시절 국토교통부 장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냈다. 당시 국무총리 직무대행까지 역임한 유 전 부총리는 퇴임 후 서울대 초빙교수와 건국대 석좌교수를 역임했고, 연세대 특임교수로 계속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국회에서는 조세·재정 분야의 전문성을 살려 기획재정위·정무위에서 주로 활동했다.

유 전 부총리는 자신의 부총리 시절과 비교하며 “어느 때보다 경제 위기감이 감도는 시기는 맞다”고 했다. 위기의 단계를 묻는 말에 그는 당시 유승민 전 의원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그는 “부총리를 맡고 있을 때 유승민 전 대표가 ‘경제 위기로 보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물어왔다.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리먼 사태를 기준으로 보자면 2016년 그 무렵, 우리는 ‘과거의 위기’가 재현될 가능성은 굉장히 낮다고 봤다”고 말했다.

이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불황이나 일본의 전철을 잠깐 밟지 않을까 싶었던 게 당시 생각이었다. 5, 6년 흐른 지금 어떠한가. 우리에게 인플레이션 대책 자체가 고통인 상황이 됐다. (그 시점과 비교하면) 어려운 상황인 건 분명하다”고 평가했다. 이어 “현 경제 위기는 우리나라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현 정부에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그래도 지금 경제팀은 해결을 찾아야 하고, 1998년 외환위기 수준으로 가기 않도록 어느 정도 방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 세계는 양적 완화 후유증…금리인상 불가피”

유 전 부총리는 전 세계가 안고 있는 ‘금융 리스크’를 주목했다. 2년여간 전 세계를 혼돈에 빠뜨린 코로나 팬데믹은 잠잠해졌지만 미국발 금리 인상이 세계 경제를 흔들고 있다. 여기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미중 경쟁도 시장 불안감을 키운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이 글로벌 협력을 외치지만 주요국 간 공조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이번 경제 위기 성격이 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 전 부총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금융 시장이 붕괴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했지만 G20을 중심으로 국제 공조가 이뤄졌다. 전 세계적으로 힘을 합쳤기 때문에 비교적 빨리 극복할 수 있었다. 이번 위기에서의 관건은 바로 ‘이런 공조가 가능하냐’는 것”이라며 “이는 이번 정부가 다른 때보다 경제 위기를 대응하기 힘든 이유”라고 짚었다.

현재 위기가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의 후유증”이라는 진단도 내놓았다. 올해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위원회를 중심으로 본격화된 긴축의 시간을 이해하려면, 과거 양적완화 정책도 함께 펼쳐놓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2008년 당시 벤 버냉키 미 연준 의장은 국채 등을 사들여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양적 완화’ 정책을 폈다. 당시 정책은 시간이 흘러 코로나 팬데믹 극복 과정에서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들이 시행한 대규모 재정 투입, 양적 완화 등 경기 부양책의 근거가 됐다.

돈 줄을 죌 시기를 놓쳐 인플레이션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유 전 부총리는 “당시 버냉키 의장이 ‘헬리콥터 머니’라고 불릴 만큼 양적 완화 정책을 공격적으로 펴면서 각국 정부들도 재정 지출을 확대하는 정책을 많이 했다. 어느 정도 위기를 넘기면서 테이퍼링으로 돈을 회수하는가 싶었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오히려 돈을 더 풀어버리니 후유증이 드디어 ‘팡’ 터지는 게 아닌가 싶다”며 “원인은 사실 여기서부터 시작하며 과거 한국 경제 위기와의 성격이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을 피할 수 없는 조치로 꼽았다. 인상 속도와 수준에 대해서는 “지금보다 더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했다. 유 전 부총리는 “미국이 금리 인상을 ‘울트라’ 강도로 하는데 우리도 올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미국의 인상 폭을 따라가는 건 (현재 가계부채 상황을 고려해) 어렵다고 본다. 그렇다고 지금이 ‘신의 한 수’라고는 말 못 한다. 그건 현장의 있는 사람들의 판단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일호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8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카페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긴축 보완해주는 재정 여력 ‘빨간불’…그래도 포퓰리즘 안 돼”

재정 여력도 녹록지 않은 상태다. 과거 한국 경제 위기 때는 그래도 정부가 공적 자금을 투입 할 수 있을 만큼 어느 정도 재정 건전성이 뒷받침됐지만 이제는 다르다는 진단이다. ‘국제 공조’에 이어 ‘정부 재정 지원’ 마저도 과거 경제 위기와 달리 마땅한 돌파구가 되지 못하는 이중고의 현실이다. 기획재정부 집계에 따르면, 2017년 660조 원이었던 국가채무는 지난해 967조 원으로 뛰면서 올해 약 1070조 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을 지냈던 그는 “긴축 통화정책을 펼 때 재정 정책을 완충 장치로 활용하면서 선별 지원을 한다. 1998년 외환위기 때는 부채비율이 10%대였다. 적어도 돈 문제 걱정 없이 공적 자금을 투입해서 구조 조정도 했고 회수도 했다. 그 이후 20%대로 오르기도 했지만, 필요하면 써야 하는 게 재정이다. 하지만 지금은 만만치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정 포퓰리즘’에 빠져선 안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는 첫 예산안을 639조 원 규모로 편성하면서 문재인 정부에서 이어진 사업 24조 원을 삭감하는 역대 최대 ‘지출 구조조정’을 했다. 윤 정부는 올해 5.2%인 총지출 증가율을 점진적으로 4%대로 낮추는 방향으로 재정을 운용하기로 했다. 관리재정수지 적자도 2%대로 유지할 방침이다. 이에 야당은 ‘윤석열 정부의 부자 감세로 인한 복지예산과 임대주택 공급 사업 축소가 우려된다’고 강하게 반발한다.

유 전 부총리는 “지금은 적자, 지출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가 민주당 정부답지 않게 행동했다고 회자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과감하게 지출을 깎고 흑자로 만들어놓은 것”이라며 “우리도 지금 그런 결단이 필요한 시기라고 본다”고 했다. 서민층에 긴축 재정 고통 분담이 쏠리는 현상은 없어야 한다면서도 “‘생산적 복지’ 성격과 거리가 먼 복지 지출은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감세를 골자로 한 윤석열 정부의 세제개편안도 여전히 논란이다. 감세 효과는 경제 학계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현 정부가 추진하려는 법인세 인하 역시 투자 증가·경제 성장을 일으킨다는 주장도 있지만, 경제적 낙수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반박이 맞선다. 현재 영국에서 벌어지는 감세 논란도 대표적인 예시다. 지난달 취임한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는 감세로 경제 성장을 이끈다는 취지로 감세안을 들고 왔지만, 세계 금융시장 혼란을 일으키면서 20일(현지시간) 임명 44일 만에 총리직을 사임했다.

이에 대해 유 전 부총리는 “우리나라는 영국과 상황이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영국은 재정 적자 문제가 심각한데 대책없이 세금을 깎아주다보니 여론이 악화됐다. 하지만 한국은 감세와 함께 ‘적자와 지출’을 동시에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이 설계됐다”고 우려를 일축했다. 이어 “세율은 상황에 따라 올릴 수도 내릴 수도 있다. 다만, 현재의 법인세율을 다시 인하하는 데 찬성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경제학자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가 정리한 '법인세의 귀착'을 언급한 뒤 “법인세를 납부하고 난 후의 세후 기업수익은 미래 투자를 위한 사내유보로 남겨지거나 주주에게 배당이 된다. 주주가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계층이므로 법인세는 소득 재분배적인 역할을 한다고 볼 수는 있다. 하지만 법인세의 최종 도착지를 봐야 한다”며 “궁극적으로 법인세 부담은 기업에 고용된 근로자, 그리고 변동된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소비자들도 함께 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법인세의 진정한 귀착이 알려진다면 ‘법인세 때리기’ 인기는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담=정일환 정치경제부 부장 / 정리=유혜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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