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조가 공급 확대로 바뀌면서 정비사업에도 규제 완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지만, 아파트 매매 시장까지는 영향을 주지 못하는 모양새다. 거래는 계속해서 줄고 있고 실거래가와 호가(집주인이 매도할 때 부르는 가격) 역시 하락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집값 고점 인식, 계속된 금리 인상 등 금융부담이 더 커지고 있는 탓이다.
7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 아파트는 올들어 이날까지 매매 거래 건수가 전체 17건에 그쳤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거래 건수인 57건 대비 약 70% 감소한 수치다.
눈에 띄는 점은 '주택 재건축 정비계획 수립 및 정비구역 지정·경관심의(안)'이 지난달 19일 통과됐지만 그 이후에도 거래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1979년에 지어진 은마 아파트는 서울 내 대표적인 노후 재건축 단지로 꼽힌다. 정비계획안이 통과된 것은 재건축 조합설립 추진위원회가 설립된 지 19년만, 도시계획위원회에 최초 상정된 지 5년만으로, 앞으로 사업 진행에 있어 괄목할 만한 성과로 평가된다. 다만 이러한 재건축 호재 이후에도 여전히 거래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시장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대치동 A공인 관계자는 “발표 초기에는 잠깐 매수자, 매도자 모두 문의가 쏟아졌지만 정작 실제 거래로는 이어지지 않았다”며 “금리가 계속해서 오르고 있고 집값 하락 분위기도 있어 매수자와 매도자 간 눈치싸움이 심해지면서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격 하락세도 이어지고 있다. 이 아파트 전용면적 76㎡형(2층)은 지난달 8일 19억9000만 원에 거래됐다. 이 아파트 같은 층수가 4월 22억8000만 원에 거래된 것과 비교하면 6개월 새 2억9000만 원 하락한 셈이다. 현재 호가는 최저 19억 원 수준까지 내렸다.
거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매물도 쌓이는 추세다. 아실에 따르면 이날 기준 은마 아파트 매매 매물 건수는 144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정비계획안 통과가 발표됐던 지난달 19일 120건 대비 20% 늘어난 수치다.
이런 분위기는 은마 아파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정비사업이 속도를 내고 있지만 정작 거래로는 이어지지 않는 재건축 단지가 적지 않다.
서울시는 이날 영등포구 여의도동 ‘시범’ 아파트를 최고 65층 높이, 2500가구 규모로 재건축하는 내용을 담은 신속통합기획안을 확정했다. 다만 이러한 내용을 담은 가이드라인 수정안은 이미 9월에 발표된 바 있다. 그럼에도 이 단지의 거래절벽과 가격 조정세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 단지 전용 156㎡형의 현재 최저 호가는 32억 원이다. 이는 해당 평형의 가장 최근 거래가와 같은 수준이다. 재건축 호재 발표가 거래 및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은 셈이다.
여의도동 S공인 관계자는 “시장에서 아직 눈에 띄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며 “여전히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있고, 금리상승이 이어지고 있어 단시간에 분위기 반전은 어려워 보인다”고 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저금리 상황이나 유동성이 풍부할 때는 이러한 정비사업 호재로 인한 변화가 바로바로 나타났지만, 지금은 금리 인상과 가격 하락세 영향이 더 커 이를 상쇄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금융적인 부담이나 사업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한 이상 당분간 이러한 상황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