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카 유지(세종대 대우교수, 정치학 전공)
마쓰노 히로카즈 일본 관방장관은 2일 오전에 아소 부총재의 한국 방문을 공식 발표했다. 일본 정부의 공식발표가 있었던 바로 그날 아소 부총재는 서둘러 방한한 것이다. 이런 경위를 보면 한일 간에 갑작스럽게 합의하여 아소 부총재가 방한한 것으로 보인다.
방한한 아소 부총재는 윤석열 대통령과 비공개로 회담했다. 회담 내용은 ‘한일 간 민간 교류를 활성화하자’라는 상식 수준의 이야기 이외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아소 부총재가 왜 이 시기에 갑자기 방한했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런 의문을 푸는 열쇠는 몇 가지 있다. 윤석열 정부의 지지율 하락, 이태원 참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거취문제, 강제징용판결에 따른 현금화 문제, 강제징용판결의 배상금을 행안부 산하인 한국의 재단을 활용해서 지급하는 방안 등이 그것이라 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역대 한국 정부가 지지율이 하락하면 이를 회복시키기 위해 반일정책을 쓰기 시작한다고 인식하고 있어서 윤석열 정부가 한일관계 개선이라는 입장에서 반일정책으로 방향을 선회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그러므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아소 부총재라는 실세 인사를 보내 윤석열 정부의 한일개선 의지가 여전히 확고한지를 확인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지난해 9월부터 10월 초에 걸쳐 아소 부총재는 기시다 총리가 자민당 총재에 선출되고 총리가 되는 과정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지원했다. 당시 아베 신조 전 총리는 기시다 이상으로 다카이치 사나에를 지원했기 때문에 아베 전 총리와 기시다 총리 사이의 신뢰 관계에 사실상 금이 갔다. 기시다가 총리가 된 후에도 아베 전 총리를 비롯한 자민당 내 강경파들은 사사건건 기시다 총리의 정책을 비판했고 극우 정책을 요구했다.
그러나 기시다 총리는 아베 전 총리와 대결하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항상 아소 부총재와 의논하면서 자민당과 일본 정부의 인사나 주요정책을 결정해 나간 사실이 있다. 즉, 아소 부총재는 기시다 총리의 후견인 역할을 해왔고 아베 전 총리가 사망한 후에는 일본 정계의 상왕과 같은 존재가 됐다. 일본 정계의 실세가 아베 전 총리의 사망으로 아소 부총재로 바뀌게 된 셈이다.
기시다 총리가 이번에 일본 정부 인사를 한국에 보내지 않고 아소 자민당 부총재를 보낸 이유를 살펴보자. 정부 인사면 기자회견 등 공식적 입장을 표명해야 하지만 여당의 부총재라는 외견상으로 별로 중요치 않아 보이는 아소라면 정부 인사가 아니니 공식적 입장 표명이 필요 없고 오히려 내실 있는 밀담을 윤석열 대통령과 나눌 수 있다고 기시다 총리가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태원 참사에 대한 책임론이 커지고 있는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사임하게 되면 윤석열 대통령뿐만이 아니라 일본 측 입장에서도 곤란하다. 이상민 장관은 강제징용판결에 따른 배상금을 한국의 기존 재단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대신 지급하게 하려는 정책의 책임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장관이 사임하게 되면 한국과 일본이 합의한 것으로 알려진 강제징용문제 해법이 암초를 만날 우려가 있다.
최근 일본 아사히신문은 2015년 한일위안부합의 때 일본 정부가 한국 측에 지급한 10억 엔(약 96억 원)의 기금을 강제징용판결 배상금으로 사용하는 것을 한국 정부가 고려 중이라는 기사를 냈다. 이런 내용을 현지 주요 신문이 보도한 것을 보면 일본 정부도 이런 아이디어에 긍정적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이태원 참사로 일본 여성 2명도 희생되었다. 일본에서는 연일 이번 참사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한국 못지않게 많은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잘못하면 이번 사고를 계기로 일본 내에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악화할 수도 있는데 이런 부분도 고려하여 아소 부총재가 윤석열 정부에 희생자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주문했을 수도 있다. 아소 부총재가 방한한 후 3~4일 일본인 희생자의 관은 비행기로 일본에 운구됐다. 러시아 국적의 고려인 관은 배우 이영애 씨가 운구 비용을 내주었다고 전해진다. 1000만 원 정도가 되는 비용을 고려인 가족이 부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런 문제는 일본 측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본인들의 관을 모국으로 보내는 운구 비용도 과연 희생자의 가족들이 자비로 지급했는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