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점포 축소 대응 대체 창구 마련ㆍ제공 “완료했다”지만
4대 시중은행 아직 MOU만…“우체국 업무위탁 12월 초 개시 예정”
# 김미자(가명ㆍ82) 씨는 통장정리를 하거나 돈을 찾으러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은행을 자주 찾곤 했다. 김 씨가 통장정리를 하러 은행에 간 어느 날, 닫힌 문 앞에는 리모델링 중이라며 인근 지점을 이용하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인근 지점은 김 씨의 집에서 차로 20분 정도 거리였다. 거동이 불편해 이동할 수 없었던 김 씨는 핸드폰으로도 은행 업무를 볼 줄 몰라 자녀에게 도움을 청했다. 김 씨는 “잠시 문을 닫는대도 불편한데 아예 사라지면 매번 자녀에게 부탁해야 하지 않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최근 비대면 거래 증가로 은행의 오프라인 점포 수가 줄어들면서 이 씨, 김 씨와 같이 불편을 겪는 사례가 늘고 있다. 김 씨와 같이 애플리케이션(앱) 사용이 힘든 고령층일수록 불편의 정도는 커진다.
그러나 여전히 지점 감소 폭은 줄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이 점포 폐쇄에 따른 고객의 불편을 최소화하고자 발표한 ‘대체 창구’ 마련도 지점 감소 속도와 비교하면 느린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4대 시중은행(KB국민ㆍ신한ㆍ우리ㆍ하나)의 지점 수는 총 2569곳으로 지난해 6월 말(2828곳)보다 259곳 줄었다. 2020년 이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비대면 거래가 확대되면서 가속화된 지점 감소세가 계속되고 있다.
점포 폐쇄 속도를 늦추기 위해 은행연합회와 금융위 등 금융당국이 마련한 제도적 장치는 크게 두 가지다. 각 은행이 점포 폐쇄 결정 전 실시해야 하는 ‘사전영향평가’와 점포 유지나 대체 창구 마련에 대한 인센티브를 주는 ‘지역재투자 평가’이다.
문제는 이 같은 노력에도 지점 감소 폭이 줄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3월 은행연합회가 ‘은행 점포 폐쇄 관련 공동절차’ 개정안을 시행해 점포 폐쇄 전 사전영향평가를 하도록 했고 금감원은 각 은행이 사전영향평가 결과를 제출하도록 했지만, 이후 오프라인 점포 수는 되레 더 많이 줄었다.
4대 시중은행 지점 수는 2020년 3월 말 3021곳에서 지난해 3월 말(2841곳)까지 180곳 감소한 반면, 개정안 시행 이후인 지난해 3월부터 올해 3월 말까지 총 229곳이 줄어 감소 폭이 커졌다.
이는 사전영향평가의 실효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금감원이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월에서 올해 6월 말까지 사전영향평가에 따라 지점을 유지하거나 출장소로 전환한 점포의 수는 19개다. 사전영향평가를 실행한 4대 시중은행 점포 322개 중 5.9%에 불과했다.
김 의원은 “지점의 감소 수를 고령화 속도와 비교하면 (점포 폐쇄 대응책이) 많이 부족한 상태”라며 “지점별 영업이익보다는 금융 취약계층 분포, 대체 지점과의 거리를 더 검토하는 등 사전영향평가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사전영향평가는 연령대별 고객 분포, 금융취약계층 분포 등 은행연합회가 마련한 기준에 따라 각 은행이 점포 폐쇄 시 고객 보호 방안을 자율적으로 마련해 시행하게 돼 있다.
점포 폐쇄 전 지켜야 하는 절차와 고려해야 하는 요소들이 포괄적으로만 규정돼 있고, 개별은행이 사전영향평가를 할 때 지켜야 하는 세부 규정은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다.
은행연 관계자는 “은행 점포 폐쇄 관련 공동절차는 선언적인 얘기에 가깝다”며 “개별 은행이 구체적으로 어떤 기준을 가지고 평가하는지까지는 (은행연합회가) 알 수 없다”고 했다.
금감원도 결과 보고는 받지만, 사전영향평가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개별은행은 분기별 업무보고서에 폐쇄 점포의 사전영향평가 결과자료를 첨부해 금감원이 점포 폐쇄 절차 준수 여부를 감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각 개별은행 사전영향평가의 구체적 규정에 대해서는 은행연과 마찬가지로 파악할 수 없다고 금감원 측은 설명했다.
금감원 보고 이후 사전영향평가가 소홀히 이뤄지진 않았는지 등을 검토하고 제재를 가하는 장치도 부족하다. 금융위가 지역재투자 평가를 실시하지만, 올 8월 개정된 평가 기준에 따르면 점포 폐쇄 시 사전통지, 사전영향평가를 미실시하는 기관에 대해 감점 1점을 하는 수준의 장치밖에 없다.
김 의원 측은 “금감원에서 지금처럼 결과만 보고받는 게 아니라 점포 폐쇄 문제에 더 관여해야 한다”며 “그래야 은행들도 (점포) 폐쇄를 좀 더 신중하게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점포 폐쇄 추세에 따라 금융당국이 발표한 ‘대체 창구’ 제공 속도가 느리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2020년 8월 ‘고령친화 금융환경 조성방안’을 발표했다. 당시 금융위는 점포 축소에 대응한 대체 창구를 제공하겠다며 지점 수가 많은 우체국과의 창구업무 제휴 강화 등을 대안으로 내놨다.
그러나 4대 시중은행의 우체국 업무위탁 서비스 제공은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금융위가 올해 7월 김희곤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2020년 고령친화 금융환경 조성방안의 세부 추진과제 중 ‘점포 축소에 대응한 대체 창구 마련과 제공’이 ‘완료됐다’고 밝힌 것과 다른 상황인 것이다.
앞서 6월 4대 시중은행이 우정사업본부, 금융결제원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연내 우체국에 대한 은행의 업무 위탁을 확대하겠다는 계획만 발표한 상태다. 이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11월 말이나 12월 초에 서비스를 개시하려고 하고 있다”며 “아직 전산 작업 중”이라고 전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지금 있는 (사전영향평가, 지역재투자 평가와 같은) 제도적 장치를 더 강화하면 좋긴 할 것”이라면서도 “당국이 재정으로 (은행의 영업이익을) 보전해줄 수도 없는 노릇인데 지점을 유지하라고 (은행에) 강제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점이 없어지는 추세 자체를 바꿀 수는 없기에 (지점을 유지했을 때) 인센티브를 주거나 고객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끔 우체국 업무 제휴 등 오프라인 채널을 다양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며 “소비자 불편이 발생하지 않도록 적절한 대응을 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