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6000억 원 규모의 피해를 발생시킨 ‘라임자산운용 펀드 사태’ 핵심 인물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재판 중 도주하면서 보석 허가 판단 기준에 의문이 생기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보석을 허가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평가하지만 과거 5개월 잠적했던 김 전 회장에 대한 보석 결정은 적절하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상황이다.
14일 대법원 '2022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지방법원 청구에 의한 보석 관련 보석허가율은 27.4%로 집계됐다. 2013년 보석허가율은 40.6%에 이르다가 2016년 33.6%를 시작으로 2018년 34.1%, 2019년 36.7%, 2020년 30.8%로 점차 감소했다. 미국(47%), 영국(41%) 등과 비교하면 낮은 수치다. 주요 선진국보다 여전히 보석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셈이다.
법조계는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불구속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데 공감을 표하고 있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은 3년 전 구속영장 심사를 앞두고 5개월간 잠적한 적이 있을 정도로 절차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통계상으로 보석 조건을 위반 사례가 극히 드물어 재판부도 도주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면서도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야 방어권을 충분히 보장받을 수 있겠지만 라임 사태는 피해 규모나 특수성을 고려해 보석 허가를 결정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구속영장 심사 전에 잠적한 전적이 있었는데 더 신중하게 판단하면 어땠을지 아쉬움이 남는다"고 덧붙였다.
김 전 회장은 보증금 3억 원과 주거제한, 도주 방지를 위한 전자팔찌 부착 등을 조건으로 지난해 7월 보석 석방됐다. 검찰은 그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 중 도주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세 차례나 기각했다. 법원은 "김 전 회장이 보석 이후 1년 넘게 재판에 출석하면서 보석 조건을 위반하는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보석 결정의 취지가 충분히 존중돼야 하고 보석 이후 현재까지 취소 사유에 해당할 만한 사정 변경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검찰은 지난달 26일에 열린 재판에서도 이종필 전 라임 부사장이 도주했던 사실을 거론하며 "김 전 회장이 피해자들과 합의가 안 돼 법정 구속이 예상될 경우 중국 밀항을 준비했다는 내부자 진술이 있다"며 "재판 기간 중 합의를 위해 성실하게 출석했다는 사실이 선고기일 출석을 담보하지는 않는다"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법원은 11일 오후 2시 50분께 보석을 취소했지만 이미 하남시 팔당대교 인근에서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한 뒤였다.
수도권 법원에서 근무하는 한 현직 판사는 "보석 제도가 상당한 금액을 법원에 내고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 만큼 '유전무죄'라는 비판이 많은 게 사실"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여러 상황을 고려하면 보석 석방이 적절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재판부는 현행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판단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번 사건처럼 핵심 피의자가 도주하는 맹점을 보완하려면 입법부가 나서야 한다"고 언급했다.
김 전 회장이 도주하자 국회는 법원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봉현이 도망간 것에 법원이 방조한 셈”이라고 꼬집었다. 김상환 법원행정처장은 “영장(심사) 관련 재배당 문제에 대한 상황을 알아보고 살펴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