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法 “범죄 목적 몰라도…탈법행위 용이하게 해 방조”
보이스피싱 범죄에 악용된다는 사실을 몰랐어도 본인의 대포통장을 제공하는 행위는 금융실명제 위반이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15일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불법 환전 업무를 도와주면 대가를 지급하겠다는 제안을 받고 자신의 금융계좌번호를 알려줬는데, 불법 환전이 아닌 실제로는 전기통신금융사기 편취금 은닉에 사용돼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위반 방조죄 상고심에서, 피고인에게 무죄로 판단한 원심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법원에 따르면 피고인은 2019년 1월 22일 성명불상자로부터 “마카오에 본사가 있고, 한국에 체인점이 있는데 한국에 있는 고객들을 상대로 환전해주는 업무를 한다. 10시부터 16시까지 일하고, 월 400만~600만 원을 지급하겠다. 고객이 입금한 돈 940만 원을 인출해 우리가 보내는 환전소 직원에게 건네줘라”라는 말을 듣고 이를 승낙한 후 본인 명의 신용협동조합 계좌를 알려줬다.
성명불상자는 같은 달 29일 전화금융사기 범행을 통해 이모 씨로부터 940만 원을 피고인 명의 신협 계좌로 송금 받고, 피고인은 이를 인출해 수수료 15만 원을 제한 나머지 925만 원을 성명불상자에게 건네줬다.
이로써 피고인은 성명불상자가 탈법행위를 목적으로 ‘타인인 피고인의 실명으로 금융거래를 하는 것’을 용이하게 해 이를 방조한 혐의로 옛 금융실명법 위반의 방조죄로 기소됐다.
재판에서는 목적범의 방조범 성립과 관련, 정범의 목적에 대한 구체적인 인식이 필요한지가 쟁점이 됐다.
이 사건에 대입해 생각하면 ‘전화금융사기 편취금 은닉을 목적으로 한 타인 명의의 금융거래’라는 정범이 목적으로 삼은 행위와 ‘무등록 환전 영업을 목적으로 한 타인 명의의 금융거래’라고 하는 피고인이 인식한 정범의 고의 중 정범의 목적 내용이 다른 경우, 방조범 성립 요건인 ‘정범의 고의’를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가 됐다.
원심은 “피고인에게 정범인 성명불상자가 탈법행위를 목적으로 피고인의 실명으로 금융거래를 한다는 점에 관한 고의가 있었음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 판단을 배척했다. 대법원은 “전기통신금융사기의 범인이 사기 범행을 통한 편취금을 자신이 아닌 타인 명의 금융계좌로 송금한 경우 ‘탈법행위’를 목적으로 한 타인 실명 금융거래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구 금융실명법 위반죄는 ‘탈법행위의 목적’을 범죄성립요건으로 하는 목적범이므로, 방조범에게도 정범이 이 같은 탈법행위를 목적으로 타인 실명 금융거래를 한다는 점에 관한 고의가 있어야 하나, 그 목적의 구체적인 내용까지 인식할 것을 요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피고인은 정범인 성명불상자가 금융실명법상 ‘탈법행위’에 해당하는 무등록 환전 영업을 하기 위해 타인 명의로 금융거래를 하려고 한다고 인식했음에도 이러한 범행을 돕고자 자신 명의의 금융계좌 정보를 제공했고, 정범인 성명불상자는 이를 이용해 전기통신금융사기 범행을 통한 편취금을 송금 받음으로써 탈법행위를 목적으로 타인 실명의 금융거래를 했으므로, 피고인에게는 금융실명법 위반죄의 방조범이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피고인이 정범인 성명불상자의 탈법행위의 구체적 목적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범죄 성립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이와 달리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한 원심 판결을 파기‧환송한다”고 밝혔다.
박일경 기자 ek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