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우크라에 100발 이상 미사일 퍼부어
나토 헌장 4조 발동 검토...긴급회의 소집
미국은 신중한 반응…정부 관계자 "우크라이나군 대공 미사일 가능성"
폴란드 외무부는 이날 오후 3시 40분 동부 우크라이나 국경 마을인 프셰보도프에 미사일 두 발이 떨어졌으며 분석 결과 러시아산이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이날 우크라이나 전역에 100발 이상의 미사일을 퍼부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최대 규모 포격으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최근 탈환한 헤르손을 방문해 “전쟁 종식의 시작”이라고 밝힌 지 하루 만이다. 폴란드에 미사일이 떨어지기 불과 몇 시간 전, 젤렌스키 대통령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화상 연설에서 “에너지 안보 보장·포로 전원 교환·우크라이나 영토 회복을 전제로 평화협상에 나설 용의가 있다”고도 했다. 전쟁을 끝내야 할 때라고 발언하는 우크라이나를 향해 보란 듯이 미사일 폭격을 가한 것이다. 이날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700만 가구에 정전이 발생했다.
미사일 포격 과정에서 두 발이 폴란드 영토에 떨어지면서 유럽이 발칵 뒤집혔다.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생 이후 나토 회원국 영토가 처음으로 미사일 피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폴란드는 즉각 군 대비태세를 격상하고, 러시아 대사를 소환했다. 나토 헌장 4조 발동 검토에도 나섰다. 나토 헌장 4조는 당사국 중 한 국가가 영토 보전, 정치적 독립, 안보에 위협이 있다고 판단할 때 나토의 정치적 의사 결정 기구인 북대서양이사회에 긴급회의를 소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16일 오전 벨기에 브뤼셀 나토 본부에서 긴급 회의를 열고 폴란드 상황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미사일 폭격 관련 조사를 적극 지원하겠다면서도 발사 주체를 러시아로 특정하는 데 신중함을 보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6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G7, 나토 회원국 정상들과 긴급회의를 열었다. 이후 취재진에게 “폴란드 미사일 폭격 관련 조사를 지원하기로 만장일치로 합의했다”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하게 파악한 후 공동으로 다음 조치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은 “미사일이 러시아에서 발사됐다고 단정하기는 이른 것 아닌가”라는 취재진 질문에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예비 정보가 있다”며 “미사일 궤적 상, 러시아에서 발사되지 않았을 수 있다”고 밝혔다. 3명의 미국 정부 관계자도 우크라이나군의 대공 미사일이 폴란드에 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AP통신에 전했다. 앞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쏜 100발이 넘는 미사일 가운데 70발 이상을 격추했다고 발표했는데 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군의 미사일이 폴란드에 떨어졌을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러시아 국방부는 폴란드 미사일 공격 사실을 부인하며 해당 보도는 고의적인 도발이라고 날을 세웠다.
미사일 발사 주체를 규명하는 조사 결과에 따라 상황도 급변할 것으로 보인다. 만일 러시아가 고의로 폴란드를 공격했다고 밝혀질 경우, 나토와 러시아의 확전은 불가피하다. 나토 헌장 5조는 한 회원국에 대한 공격을 전체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른바 ‘집단방위’ 조항이다. 3차 세계대전으로 전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러시아의 실수로 미사일이 떨어졌거나 미국의 초기 분석처럼 우크라이나의 대공 미사일이라면 나토의 대응이 애매해질 수 있다.
영국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윌리엄 앨버크 전략·기술·군축국장은 “폴란드 영토에 떨어진 미사일이 러시아산이라고 해도 실수라면 5조에 명시된 무장 공격에 해당하지 않을 수 있다”며 “고의적 무장 공격은 실제 공격을 뜻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