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16강으로 향하는 길은 녹록지 않다. 선수들의 부상을 비롯해 수비 불안, 감독 부재 등 문제가 산적해 있다. 그런데도 태극 전사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왜일까.
‘한국팀 최대 전력’으로 꼽히는 캡틴 손흥민은 안와골절 부상으로 제 기량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부상 방지를 위해 소속 클럽인 토트넘에서 제작한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지만, 마스크로 인한 불편함이 큰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8일 치른 가나전에서는 헤딩을 시도할 때 마스크가 시야를 완전히 가리는 모습이 포착돼 축구 팬들의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다.
수비 라인도 불안하다. 왼쪽 수비수 김진수는 월드컵 전 햄스트링(허벅지 뒤 근육) 부상으로 월드컵 개막 후에도 재활에 신경 써야 했다. 그 상태로 두 경기 연속 풀 타임을 소화해 체력적으로도 지친 상태다. 우려하는 여론에 그는 우루과이전 후 인터뷰에서 “안 아픈 선수가 없다. 다들 진통제를 먹고 뛴다”고 말했다.
한국 수비의 중심으로 지목되는 ‘괴물’ 김민재는 출전이 불투명하다. 지난달 24일 우루과이와의 1차전 후반에 상대 팀의 다르윈 누녜스를 저지하려다 미끄러져 오른쪽 종아리를 다쳤다. 부상을 안고 우루과이전 풀 타임을 뛴 그는 같은 달 28일 가나전에도 선발로 출전했다가 추가 시간에서야 교체를 요청했다. 가나전 이후 대표팀의 첫 훈련이 진행된 29일에는 자전거를 타고 스트레칭을 하는 등 회복에 중점을 둬 훈련을 진행했으나, 30일에는 아예 훈련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표팀 관계자는 “김민재는 호텔에 남아 치료와 휴식을 병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가나전에서 레드카드를 받아 포르투갈전을 관중석에서 보게 된 파울루 벤투 감독의 지휘 공백도 우려된다. 포르투갈전에서는 벤투 감독 대신 세르지우 코스타 수석코치가 벤치를 지킨다. 벤투 감독은 무선 통신을 통한 지휘가 불가능하며, 하프타임 라커룸 출입도 제한된다. 한국 축구 대표팀이 사령탑 없이 월드컵 본선을 치른 건 1998 프랑스 월드컵 벨기에전 이후 24년 만이다. 특히 벤투 감독은 모국인 포르투갈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그의 부재가 더 큰 아쉬움을 남긴다.
갖은 악재 속에서도 태극 전사들이 희망을 놓지 않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큰 기대는 ‘젊은 피’ 조규성(24)과 이강인(21)의 실력에 물이 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지난달 24일 열린 조별리그 1차전 우루과이전에서 선발과 교체 투입되며 월드컵에 데뷔했다.
조규성은 가나전에서 대한민국 최초로 월드컵 멀티 골에 성공하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강인은 권창훈과 교체 투입된 직후 감아올린 왼쪽 크로스로 조규성을 어시스트하며 가나전 첫 득점에 기여했다. 앞선 우루과이전에서 후반 29분 교체 투입된 조규성은 위협적인 중거리 슈팅으로 존재감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때도 이강인은 조규성의 슈팅에 도움을 주며 ‘공격의 활로’를 뚫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공격수 황희찬의 복귀 가능성이 커진 점도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그는 소속팀 울버햄프턴에서 햄스트링을 다쳐 앞선 두 경기는 물론 훈련에도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다. 폭발적인 스프린트(단거리 질주)가 주특기인 황희찬에게는 매우 치명적인 부상이었다.
그러나 지난달 29일 그는 대표팀 훈련에서 스프린트, 킥, 드리블 등을 모두 소화해냈다. 70m를 8초에 뛰며 “아직 전력 질주는 안 했다. 80~90% 수준까지 달려본 상태”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이는 사흘 전 같은 거리를 15초에 뛴 것보다 확연히 좋아진 기록이다.
황희찬 자신도 경기를 뛸 의지가 충만하다. 그는 손흥민과 김민재가 부상에도 본 경기에 출전하는 것을 보며 “같은 선수지만 뛰는 걸 보면서 너무 자랑스럽고, 감동을 받았다”면서 “나도 내 몸에 신경 쓰지 않고 3차전을 뛰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저돌적인 돌파력으로 ‘황소’라는 별명을 얻은 황희찬이 복귀하면 포지션이 같은 캡틴 손흥민의 부담은 한층 덜어질 전망이다.
상대 팀 포르투갈 선수들의 일부 결장 소식 또한 한국에는 호조다. 포르투갈은 △누누 멘데스(파리 생제르맹) △오타비우 몬테이루(FC 포르투) △다닐루 페레이라(파리 생제르맹)이 부상으로 한국과의 경기에서 빠질 확률이 있다. 핵심 선수인 △브루누 페르난드스(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후벵 네베스(울버햄튼) △주앙 펠릭스(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후벵 디아스(맨체스터 시티)는 모두 경고를 1장씩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들은 경고를 1장 더 받으면 다음 경기에 뛸 수 없다. 16강 진출이 확정된 포르투갈이 위험을 줄이기 위해 이들을 3일 경기에 내보내지 않을 수 있다. 주장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역시 우루과이전에서 발을 다쳐 출전 여부는 불투명하다. 이 경우 한국이 좀 더 수월한 경기를 펼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포르투갈이 한국과의 경기에서 총력전을 펼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포르투갈이 한국에 지고, 한국-포르투갈전과 동시에 진행되는 가나-우루과이전에서 가나가 이기면 포르투갈이 H조 2위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포르투갈은 16강에서 유력 우승 후보국인 G조 브라질과 맞닥뜨릴 가능성이 커진다.
이런 점에서 ‘인간 문어’가 한국의 승리를 점쳤다는 점은 주목할만 하다. 2대1로 끝난 독일-일본전과 0대0 무승부로 끝난 한국-우루과이전 결과를 정확히 예측해 ‘인간 문어’라는 별명을 얻은 영국 축구 해설가 크리스 서튼은 지난달 28일 BBC 홈페이지를 통해 한국의 승리를 예상했다. 그는 “(포르투갈은)브라질전을 앞두고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가나보다 승점이 3점 앞서 있기 때문에 약간 도박을 하더라도 선수들을 쉬게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할지 모른다”고 분석했다. 서튼이 예상한 한국-포르투갈전의 점수는 1-0이다.
한편 한국의 16강 진출을 결정지을 조별리그 H조 3차전은 3일 0시(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스타디움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