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마약반이 24시간 감시를 위해 범죄조직의 아지트 앞 치킨집을 인수해 위장 창업에 나선 영화 ‘극한직업’. 가게 인수부터 영업에 이르기까지 경찰들의 고군분투가 그려지는데요. 이 영화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것도 서울 한복판 한강변 강남 음식점에서 말이죠.
스페인에 본부를 둔 아시아 중심 인권단체 ‘세이프가드 디펜더스’는 최근 중국 비밀경찰에 관한 보고서를 2회에 걸쳐 발간하면서 중국이 해외 53개국에 102개가 넘는 비밀경찰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고 폭로했습니다. 특히 9월 보고서에 담기지 않았던 한국 내 비밀경찰 내용이 이달 보고서에 포함되면서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세이프가드 디펜더스의 로라 하스 캠페인 국장은 22일 이투데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비밀경찰서는 중국 공안이 통일전선부(UFWD)와 긴밀히 협력해 기존의 개인·조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설립한 것”이라며 “이들은 공산당의 이익과 자신들의 활동을 일치시키려 노력하고 공산당 비판론자들을 분열시키려 한다”고 전했습니다.
세이프가드 디펜더스에 따르면 해당 비밀경찰서의 이름은 ‘해외 110 서비스 스테이션’으로 불리는데요. 110은 한국의 ‘112’에 해당하는 중국 경찰 신고 번호입니다.
한국 내 중국 ‘비밀경찰서’로 지목된 곳은 한강 뷰가 아름답기로 알려진 서울 강남의 ’D 중식당‘입니다.
식당 법인 등기에 따르면 이 법인은 2017년 설립돼 2018년 음식료 매장과 무역·예식장·연회장·중국음식점 등을 한다고 신고했는데요. 사내이사에 포함된 한 인물은 재한 중국인 단체의 임원을 맡고 있죠. 이 식당은 대형 홀을 두고 행사와 연회 등을 주로 열어온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번 폭로에 중국 당국도 해명을 내놨는데요. 중국 당국은 이 시설들이 주재국 현지에 사는 중국 국적자들의 운전면허 갱신이나 여권 재발급 등 서류 작업 등에 행정적 도움을 주는 곳일 뿐 경찰서는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습니다.
주한 중국대사관은 23일 대변인 명의의 입장 발표를 통해 “개별 한국 언론의 근거 없는 보도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반발했는데요. 관련 보도는 전혀 사실무근이며, 이른바 ’해외경찰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거듭 밝혔습니다.
일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23일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비밀경찰서 의혹에 대해 “상황을 명확히 하는 데 필요한 모든 조처를 하겠다”며 “일본의 주권을 침해하는 중국의 어떠한 활동도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외쳤는데요. 앞서 일본 외무성은 “도쿄 등 2개 도시에서 중국 공안국이 개설한 것으로 추정되는 비밀경찰서를 파악했다”라고도 전한 바 있죠.
캐나다 경찰도 10월 27일 토론토 일대에 3곳의 중국 비밀경찰서가 설치된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고, 네덜란드 정부도 지난달 1일 자국 내 ‘중국 불법 경찰서’ 2곳을 즉시 폐쇄했다고 발표했죠.
우리 정부는 군·경찰 방첩조직 등이 참여하는 가운데 범정부 차원에서 중국의 한국 내 비밀경찰서 개설 의혹에 관해 확인 작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외교부는 22일 “중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와 소통하고 있다”면서도 “실태 파악과 관련해 현 단계에서 언급할 것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죠. 미국, 일본, 유럽(EU) 등은 외교 당국뿐 아니라 정상까지 나서 중국에 문제를 제기하고, 비밀경찰서 폐쇄 명령을 내리는 것과 달리 우리 정부가 소극적 자세를 보인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세이프가드 디펜더스에 따르면 중국은 전 세계 각국에서 ‘비밀경찰서’를 통해 화교나 유학생 등으로 구성된 비밀경찰을 이용해 반체제 인사를 본국으로 강제송환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방첩 당국은 이 ‘D 중식당’을 비교적 수월하게 중국 비밀경찰서로 지목했는데요. 혹평 속에 큰 손실을 보는데도 6년 이상 영업하는 점이 의심을 샀죠.
이 ‘D 중식당’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지켜본 건 그간 그 식당을 방문했던 고객들이었습니다. 이 음식점의 네이버·다음·구글 등 방문자 리뷰를 살펴보면 “냉동식품보다 못한 수준”, “중국집에서 면이 떨어졌다고 해서 나왔다”, “춘장 달라 하니 춘장이 없다고 함”, “두 번 다시 절대 안 간다”는 반응들이 이어졌습니다.
특히 “음식 수준이나 서빙 서비스를 보면, 음식 팔려고 장사하는 곳이 아닌 것 같다”는 댓글도 눈에 띄었는데요. 방첩 당국보다 먼저 이 음식점의 ‘수상한 점’을 눈치챈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죠.
뛰어난 음식 솜씨로 감시 업무가 소홀해질 만큼 손님들이 넘쳐났던 영화 ‘극한직업’과는 달랐는데요.
애초 이 중식당은 내년 1월 1일부터 31일까지 한 달 동안 인테리어 공사 문제로 임시 휴무하겠다고 공지했는데, 올해 12월 31일 이후 장사를 접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했습니다. 이 중식당은 출입문에 ‘예약 손님만 받습니다.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문을 붙여놓은 채 일반인 출입을 제한하기도 했죠.
심지어 이 중식당은 여의도 국회의사당 바로 앞에 지점 사무실 낸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중앙일보에 따르면 지점이 위치한 여의도 건물 9층에는 미디어업과 관련된 A사와 중국의 관영 매체인 중국중앙TV(CCTV) 서울지국의 간판이 같은 사무실 입구에 나란히 걸려 있었습니다. 요식업 등을 하는 민간 법인 지점이 중국 국영 방송사와 서울 사무실을 공유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왔죠.
중국의 한국 내 비밀경찰서 운영이 사실이라면 타국에서의 활동에 관한 관행이나 국제규범에 위배될 소지가 있는데요. 주재국의 승인 없이 공식 외교공관이 아닌 장소에서 영사 업무를 하는 경우 ‘영사 관계에 관한 빈 협약’에 어긋납니다. 중국의 비밀경찰서 의혹은 어떤 결론이 나게 될까요? 한중관계에 미칠 파장만큼 결론에도 우려와 관심이 쏟아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