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 우려로 투자심리가 얼어붙으면서 기업공개(IPO)와 인수·합병(M&A) 시장이 어느 때보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문제는 내년 전망도 어둡다는 점이다. 시중금리가 여전히 높은 데다 새내기 기업들의 주가 부진으로 투자금 회수가 어려운 상황이라서다.
◇식어버린 공모주 열기…상장 철회도 줄이어=2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유가증권·코스닥 시장에 신규 상장한 종목은 73개(스팩, 재상장 제외)로 지난해보다 21개 감소했다. 총 공모 금액도 20조4394억 원에서 16조1910억 원으로 20.79% 가까이 줄었다.
LG에너지솔루션을 제외하면 조(兆) 단위 공모주를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투자심리가 위축되면서 몸값을 깎아 상장에 나선 기업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수요예측 결과 공모가가 밴드 하단에도 미치지 못하는 기업 비율이 50%에 달했다.
대어급 기업들이 잇따라 상장을 철회하면서 규모가 작은 중소형주들만 IPO 완주에 성공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올해 들어서만 현대엔지니어링, SK쉴더스, 원스토어, 라이온하트스튜디오, 밀리의서재 등 대기업 계열사를 포함해 태림페이퍼, 바이오인프라, 자람테크놀로지, CJ올리브영 등이 상장을 철회하거나 연기했다.
◇얼어붙은 장외시장, 상장 앞둔 기업들 ‘고심’=IPO 시장의 침체 여파는 장외시장에도 번지고 있다. 금융투자협회가 운영하는 제도권 비상장 주식시장인 ‘K-OTC’의 전체 시가총액은 연초 31조4934억 원에서 지난 21일 기준 17조5633억 원까지 급감하며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증권플러스 비상장에서 거래되는 시가총액 상위 10개 종목의 합산 시가총액 추정치도 올해 초 99조 원대에서 55조 원 수준으로 반 토막 났다.
상장 채비에 나선 비상장 기업들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컬리와 케이뱅크는 각각 내년 2월과 3월 안에는 상장을 마쳐야 한다. 컬리의 기업가치는 지난해 4조 원에서 1조 원 아래로 추락했고, 케이뱅크 주가는 연초 대비 45.5% 가까이 빠졌다. 상장을 강행해 증시에 입성한다고 해도 위축된 투자심리를 고려하면 제대로 된 몸값을 받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시장에서는 내년에도 침체된 IPO 시장 분위기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내년 3월 사업보고서를 제출한 뒤 상장을 도전하는 기업들이 많은 추세였는데, 올해는 기업 실적이 좋지 않아 그마저도 어렵다고 본다”고 전했다.
◇IPO 통한 자금 조달 난항…M&A ‘대안’ 될까=M&A 시장도 최악의 한 해를 지냈다. 금리 인상으로 인해 인수 주체들의 자금 조달 부담이 커지면서다. 딜로직이 본지에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국내 M&A 거래 규모는 497억1200만 달러(약 63조2000억 원)로, 역대급 호황을 누렸던 지난해(927억1800만 달러·약 117조8800억 원)보다 46.38% 감소했다.
하지만 IPO를 통한 자금 유치가 어려워지면서 시장의 관심은 M&A로 쏠리고 있다. 지난 10월 네이버가 2조 원대의 포쉬마크 인수 거래에 성공했고, 한화그룹이 대우조선해양에 이어 STX중공업 인수전에 뛰어들면서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상장사뿐만 아니라 비상장 기업들에게도 M&A는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진형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최근 IPO 시장의 자금 조달 기능은 현저히 저하됐으며, 시황이 언제 회복될지 기약이 없는 상황”이라며 “많은 기업이 IPO를 추진하기보다 비상장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IPO를 통한 엑시트(투자금 회수)가 어려워진 가운데 M&A 매물이 쏟아져 나올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M&A 업계 관계자는 “스타트업의 경우 기업가치가 하락하면서 비자발적으로 인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