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주요 자금조달 통로로 꼽히는 회사채 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 채권금리가 조금씩 떨어지면서 자금 조달 비용이 줄어들자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회사채 발행에 나선 데다 증시보다 안정성이 높은 자산으로 평가받는 채권에 투자 수요가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오는 4일 1500억 원 수요예측에 돌입하는 KT(AAA)를 시작으로 이마트(AA0, 2000억 원), 연합자산관리(700억 원) 등이 주관사 선정을 끝내고 회사채 발행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신용등급이 AA+인 포스코와 LG화학도 이달 중 각각 3500억 원, 4000억 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검토 중이며, CJ ENM(AA-)은 1700억 원의 회사채를 발행 예정이다. AA0 등급의 롯데제과(1500억 원), LG유플러스(1000억 원), 신세계(1000억 원)도 이달 말 회사채 발행에 나선다.
GS에너지(AA0)도 출격한다. GS에너지는 11일 수요예측을 거쳐 같은 달 19일 1700억 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할 예정인데 수요예측 결과에 따라 최대 2500억까지 증액해 자금을 조달할 계획이다. 대표 주관사는 NH·KB·한국·미래·신한투자증권이다.
대기업들이 연초부터 대규모 회사채 발행 채비에 나선 것은 지난해 레고랜드 채무불이행 이후 최악의 자금경색을 경험하면서 선제적으로 현금 확보해둘 계획인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롯데건설의 2500억 원 회사채 발행이 무사히 완판되는 등 금융당국의 전격적인 자금 지원 정책 효과에 따른 시장 상황도 안정세에 접어들고 있다.
회사채 신용 스프레드도 축소 반전 중이다. 지난해 11월 말 약 180bp 가까이 급격히 벌어지던 회사채 스프레드(국고채 3년-회사채 AA- 3년물)는 현재 150bp 초반 수준으로 축소된 상황이다. 다만 롯데건설의 회사채 인수는 채안펀드와 산업은행이 각각 1200억 원, 900억 원을 인수하고, 민간투자 400억 원 순으로 낙찰돼 금융당국이 개입한 반쪽짜리 발행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연초 효과로 자금 시장이 일시적으로 회복된 것처럼 보일 수 있어도 아직 정상 수준에 도달하진 못했다는 지적이다. 이한구 금융투자협회 채권전문위원은 “지난달 한전채 발행 물량도 많았고 국고채 금리도 다시 상승할 가능성이 남아있다”라며 “오는 2월이면 국내 기준 금리, 상반기엔 미국 금리가 정점을 찍겠지만 바로 인하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고금리가 상당 기간 지속한다고 치면 올 1분기가 제일 힘들고, 2분기부터 서서히 금리가 나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회사채 시장 수요 훈풍이 이어지더라도 우량등급과 비우량등급, 긍정과 부정적 전망 산업 간 양극화도 여전하다. 한 대형증권사 채권발행시장(DCM) 관계자는 “경기가 둔화되는 국면이다 보니 금리나 스프레드 메리트보다 안전한 AA 이상 또는 A 중에서도 계열사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지주계열 기업에 수요가 몰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신용평가사들의 등급 전망이 하향이 이어지는 정유·화학 같은 산업은 시장에서도 기피하려는 심리가 뚜렷하다”라며 “포스코 그룹 같은 경우 철강 쪽을 제외하면 2차전지 사업 수요도 많고 부채비율도 높지 않아 잘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롯데는 연초에도 수요예측 흥행까지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