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은 외부 환경에 따라 ‘흥ㆍ망ㆍ성ㆍ쇠’를 반복합니다. 부침을 겪는 기업도 꾸준히 지켜온 잠재력을 인정받으면 이내 큰 성과를 내고는 하지요. 기업은 이 과정을 반복하며 성장합니다.
문제는 ‘리스크’를 얼마나 잘 관리하며 견뎌내느냐, 얼마나 이 과정을 잘 극복하느냐에 따라 영속 여부가 달라진다는 것이지요. 이른바 ‘적자생존’인 셈입니다.
산업계의 주요 테마가 빠르게 변할 때 적자생존의 의미는 더 크게 다가옵니다. 외부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한 기업은 살아남고, 그저 지금 먹거리만 움켜쥔 기업들은 도태되기 마련이니까요.
자동차 산업의 새 패러다임은 응당 전기차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는 맹목적으로 ‘전기차’를 추종하고는 합니다. 주행 중 온실가스 배출이 사실상 ‘0%’인 만큼, 친환경 자동차의 궁극점으로 여기는 인식이 지배적입니다.
문제는 눈을 돌려보면 풀어야 할 숙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는 것인데요.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전기차를 충전할 때 쓰이는 '전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수많은 화력발전소가 쉼 없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무시할 수 없는 온실가스를 내뿜고 있는 것이지요.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근원지만 달라졌을 뿐, 전기차를 100% 친환경 자동차로 부르기 어려운 시대라는 뜻입니다.
전기차가 본연의 친환경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100% 친환경 재생 에너지로 충전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여전히 친환경 재생 에너지를 뽑아내는 데 역부족입니다. 유럽의 여느 선진국과 비교하면 재생 에너지 분야에서 걸음마 수준이지요. 그나마 제주도가 지역적 특색을 살려 풍력을 이용한 재생 에너지 생성에 적극적일 뿐입니다.
결국, 생산과 운행ㆍ폐차까지 생애 전주기의 탄소 배출량을 따졌을 때 순수 전기차보다 내연기관과 전기모터를 결합한 하이브리드가 오히려 유리하다는 주장까지 나옵니다. 한국자동차공학회는 "전기차보다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생애 전주기 탄소 배출이 오히려 적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거든요.
사정이 이런 가운데에도 우리는 여전히 전기차를 맹목적으로 추종합니다.
이유는 다양합니다. 나라에서 보조금을 주니까, 조용하고 잘 달리므로,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얼리 어답터'여서, 묵직한 승차감이 좋아서 등 이유도 갖가지입니다. 정부와 기업이 유행을 만들었고, 소비자 역시 이런 변화에 빠르게 편승하고 있는 셈이지요.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 가운데 적어도 "친환경적이니까"라는 이유는 이제 빼야 할 상황입니다.
실제로 친환경차를 대표하던 전기차가 이제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도 속속 나오는데요. 당장 미국에서 전기차 판매가 주춤하기 시작했고,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주장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의 주요 언론은 전기차 기업들의 최근 주가 급락을 2000년대 초 ‘닷컴 버블’과 견주기도 합니다. 전기차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 의식이 이들의 거품을 불러왔다는 뜻입니다. 시험대에 올랐다는 사실 자체가 ‘EV 버블’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물론 전기차 판매가 역성장할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그러나 성장세가 둔화할 것이라는 전망은 설득력이 커지고 있습니다. 전기차 자체는 친환경이지만, 이들이 쓰는 전기는 친환경적이지 않다는 사실이 빠르게 확산 중이거든요.
현재 시점에서 적어도 '전기차=친환경'이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정부와 기업이 그렇게 이야기하더라도 우리는 이를 걸러낼 수 있는 눈과 귀를 지녀야 할 때입니다.
juni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