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고는 28년 전 벌어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떠올리게 합니다. 당시에도 수차례 징후가 있었지만 이를 무시하고 영업을 계속하다 참사를 당했죠. 원 장관도 이 부분을 지적했습니다.
수십년 간 제도적 보완을 통해 사고 가능성을 걷어내고 있지만 여전히 일부 책임자들은 ‘설마 일 나겠어’라고 말합니다. 안전한 대한민국은 ‘꿈’인 걸까요.
경기 성남시는 천장 석고보드 균열이 발생한 NC백화점 야탑점에 대해 정밀 안전진단 후 조치가 완료될 때까지 영업을 중단하도록 ‘건축물 사용 제한’을 통보했다고 17일 밝혔습니다. 오병권 행정1부지사와 성남시 재난안전관을 비롯한 경기도·성남시 재난안전 부서 관계자들은 이날 오전 NC백화점 야탑점에 방문해 성남시의 조치 상황과 안전진단 현장을 살폈습니다.
NC백화점 야탑점 천장 균열은 전날(16일) 2층 여성복 매장에서 발견됐습니다. 이날 1층에서는 유리 지지대가 갑자기 넘어져 깨지는 사고도 발생했는데요. 백화점 측은 임시 지지대를 설치하고 영업을 이어갔습니다. 원래 폐점 시간인 밤 9시가 돼서야 문을 닫고 균열이 생긴 천장의 석고보드 교체 작업을 벌였습니다.
다행히 사고로 인한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백화점 측이 임시 조치만 하고 고객 대피나 안내 등 조치 없이 영업을 지속한 것에 대해 우려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백화점 측은 “현장에서 안전 매뉴얼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 같다. 이 부분도 피드백해 점검할 예정”이라며 문을 닫고 정밀 안전진단을 진행하겠다고 시 조치에 앞서 밝혔습니다.
NC백화점 야탑점의 사고는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2018년 7월에도 2층 의류 매장의 석고 재질 천장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백화점 측은 “석고 텍스가 습기에 취약해 습한 날씨에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때도 백화점은 사고 현장을 천막으로 가리고 영업을 계속했습니다. 2020년에는 화재가 발생해 백화점 안에 있던 직원 70여 명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죠.
이번 2층 천장 균열은 성남시가 사건 발생 직후 건축사, 기술사 등으로 구성된 안전관리자문단 3명과 함께 긴급 안전점검을 실시한 결과, 천장 틀과 마감재인 석고판에 연결된 볼트가 떨어져 발생한 처짐 현상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1층의 제연창은 천장과 연결된 볼트가 하중을 못 이겨 떨어진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일각에서는 ‘안전 불감증’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UAE) 순방에 동행 중인 원 장관은 페이스북을 통해 “야탑 NC백화점에 대한 긴급 보고를 받았다. 안전하다는 것이 확인될 때까지는 일단 영업을 중단하고 출입을 통제해야 하는데, 그 상태에서 영업을 계속했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안전불감증이 만연해 있다는 증거”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과거 삼풍백화점도 전조가 있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영업을 하다가 큰 사고로 이어졌다”며 “직접 현장을 확인하지 못해 답답하지만, 안전에 관해서는 조그만 틈조차 방심하고 허용해서는 안 된다. 차라리 과잉 반응이 낫다. 우선 신상진 성남 시장과 통화해 바로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요청했다”고 했습니다.
온라인상에서도 안전 불감증을 지적, 이번 사고를 하나의 전조 현상으로 바라보는 반응이 이어졌습니다. 사고가 발생한 공간이 백화점이고,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영업을 지속했다는 점 등은 과거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연상케 했죠.
1995년 6월 29일 서울 서초구에 있던 삼풍백화점은 부실 공사, 무단 증축, 유지 관리 부실 등 원인으로 발생한 대형 참사입니다. 지상 5층과 지하 4층, 옥상의 부대시설로 이뤄졌던 삼풍백화점은 20여 초 만에 완전히 무너졌고, 이 사고로 사망자 502명, 실종 6명, 부상 937명 등 인명피해가 발생했습니다. 한국 전쟁 이후 가장 큰 인명피해로 기록되기도 했죠.
삼풍백화점은 붕괴 사고 수개월 전부터 조짐을 보였습니다. 본격적인 전조 현상은 붕괴 2개월 전인 1995년 4월, 5층 식당가 천장에 균열이 발생하면서 포착됐습니다. 목격자들 증언에 따르면 이후 균열에서 미세한 콘크리트 알갱이와 골재가 떨어졌으며, 5층 바닥은 천천히 내려앉기 시작했습니다.
사고 한 달 전인 5월, 균열이 크게 늘자 삼풍백화점 측은 5층을 폐쇄, 토목 전문가들을 불러 건물을 검사했습니다. ‘건물 붕괴 위험’이라는 결과가 나왔지만, 백화점 측은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사고 발생 당일까지 안전 조치 없이 영업을 이어갔죠. 5층 식당가 바닥에도 금이 갔으며, 천장은 내려앉고 있었습니다.
붕괴 약 2시간 전인 오후 3시경에는 긴급 안전 진단을 실시했는데, 이때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건물 붕괴 위험을 주장하며 영업 중단과 긴급 보수가 필요하다는 쪽과 붕괴 위험이 없으니 기둥과 기둥 사이를 받치자는 보강법을 주장하는 쪽으로요. 매출에 지장이 생길까 우려한 고(故) 이준 삼풍백화점 회장은 후자를 택하며 백화점 운영을 이어갔습니다.
결국 이날 오후 5시경부터 본격적인 붕괴가 시작됐습니다. 삼풍백화점은 불과 20초 만에 지상 5층부터 지하 4층까지 무너져 내렸고, 백화점 안에 있던 1500여 명의 고객과 종업원은 그대로 건물 잔해에 깔려 목숨을 잃거나 중상을 입었습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설계, 시공, 유지 관리의 부실에 따른 ‘예고된 참사’였던 만큼, 국민적 충격과 공분이 이어졌습니다. 참사로부터 28년가량이 지난 지금껏 생존자, 유족들의 아픔도 쉽게 무뎌지지 않는 모습입니다. 지난달에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생존자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사고 발생 이후 계속해서 유서를 쓰고 있다는 사연을 공개했습니다.
채널S ‘진격의 언니들’에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생존자이자 작가 이선민 씨가 출연해 “17년째 유서를 쓰고 있다”며 “언제쯤 이를 멈출 수 있을까”라고 토로했습니다. 이 작가는 “당시 스무 살이었고, 지하 1층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붕괴 몇 초 전 무너지지 않은 동에서 누가 저를 불렀다”며 “걸어가는데 등 뒤에서 건물이 무너졌다. 그 자리에 있었으면 압사했을 것”이라고 사고 당시 상황을 전했습니다.
이어 “건물이 팬케이크처럼 주저앉았다. 지하 1층은 천장이 바닥과 붙었다. 업소용 냉장고는 15㎝가 됐다. 엄청난 소리가 들리고 건물 파편이 박혀 살이 벌어졌다”며 “피를 너무 많이 보니까 놀라서 아픈 줄도, 피를 흘린 줄도 몰랐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는 “참사 이후 10년간은 되는 대로 살았다”며 “이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디에 서 있었느냐에 따라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삶의 목표와 희망이 사라졌다.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며 “그러고 나니까 살고 싶지 않았다. 30살에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고, 그때부터 유서를 쓰기 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작가는 정신과 치료를 병행, 일상의 루틴을 열심히 지키며 참사에서 나아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자신이 쓰고 말하는 비극에 사람들이 공감하는 모습을 보면서 ‘세상이 더 괜찮아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작가 및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참사로부터 28년가량이 지났지만, 여전히 일상에 영향을 받는 생존자의 모습은 구조적인 예방 대책 마련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체감케 합니다. 대형 사고 발생 전 포착되는 전조 현상은 참사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골든 타임’일 수 있죠. 사고가 경미할지라도 무대응으로 일관하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