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람 부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사회적 대화는 그 사회가 처한 사회적 역사적 과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구성원들의 도덕적 의지와 관심의 표현이다. 또한 각자의 주관적 경험과 관점, 동시에 객관적 전문 기술적 사실을 왜곡이나 과장 없이 함께 이해하고 해석하고자 하는 합리적 행위다.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내부의 행위자들이 그 과정과 결과에 대해 자율성과 책임을 가진다는 약속하에 동등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치적 행위다. 상대방이 오해하거나 불신하지 않도록, 사실을 이해 가능한 방식으로 숨김이나 거짓 없이 진실되게 그리고 사회적 역사적 맥락에서 정당하고 타당하게 의미를 파악하는 지적 도덕적 행위다. 따라서 모두가 동등하게 발언할 수 있고 모두에게 경청하며 무엇이든지 제한 없이 질문과 답변의 대상이 되는 사회적 대화는 정의롭고 합리적이며 올바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국회 연금개혁특위가 전문가 의견과 더불어 각 세대, 계층, 젠더, 노사의 현재 경험과 미래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경청할 때 유념해야 할 사항은 우선 공적연금의 목적과 기능에 대한 사실적 이해일 것이다. 공적연금은 강제적 은퇴제도라는 일종의 노동수급조정 경제제도에 대한 불가피한 사회적 소득보장제도다. 노동시장에서 요구하는 노동력 일부를 신규 노동자로 대체하는 과정에서 강제적으로 노동소득의 수입이 영구적으로 상실될 수밖에 없는 이들을 위한 소득보장제도다. 노동자 스스로 자신의 은퇴 이후 생계와 소비를 대비하도록 노동시장 참여기간 동안 강제적으로 저축하게 하는 일종의 금융정책이다. 사용주는 임금의 일부를 은퇴 이후로 이연시켜 지급하고 정부는 이에 대해 조세감면과 보조금 지급의 혜택을 제공하는 일종의 조세정책이기도 하다. 때로는 현재 노동자들이 이전 노동자이자 현재 소비자인 은퇴 고령자의 유효수요를 진작시켜 경기순환에 기여하기도 한다. 광범위하게는 자신의 은퇴한 부모를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 하는 부담을 덜고, 대신 자신과 자녀세대의 건강과 교육에 투자할 수 있게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연금개혁특위는 사회적 대화 참여자들에게 공적연금제도라는 ‘나무’를 복지국가라는 ‘숲’의 측면에서 관찰하고 상상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여야 한다. 복지국가는 영토 내의 시민들로부터 정당하게 통치권을 인정받고 위임받은 의회와 정부가, 변덕스럽고 때로는 자기파괴적인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조정하고 개선함으로써, 자신의 정당성을 재구성하는 통치체제다. 역사적으로 복지국가는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안정적인 사회통합이라는 상호 모순적이자 상호 필요조건적인 목표를 불완전하지만 끊임없이 관리하고 조정하여 왔다. 이러한 조정과 관리의 통치행위에 실패한 국가들은 자유시장 경제체제에서 심각한 위기상태를 오래 지속하였고, 반대로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위기를 복지국가를 통하여 조정하고 극복하는 데 성공한 국가들은 다시 경제발전을 이어나갔다.
윤석열 정부는 연금개혁을 둘러싼 사회적 대화를 이끌 중대한 책임을 지니고 있다. 지금의 인구증가율 감소라는 사회적 위기와 복합적 경제위기는 어쩌면 지금까지 한국형 복지국가가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조정하는 데 실패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계층 간 상향 이동이 급격히 어려워지고 더 나아가 세대 간 계층 이동성이 고착화되는 경제체제를 조정하는 데 실패한 복지국가의 민낯일지도 모른다. 사회적 대화를 통한 연금개혁의 성공은 좋은 한국형 복지국가로의 반전에 건실한 발판이 될 수 있다. 반면 계층 간 젠더 간 일·생활 균형의 불평등, 세대 간 계층이동 장벽의 공고화, 기업 간 산업 간 일자리 질과 위험의 불평등을 개선하지 못하고 단순히 무상보육세대와 기초연금세대 간의 대립만을 조장한다면 부끄러운 복지국가를 유산으로 남길지도 모른다. 윤석열 정부가 어떻게 사회적 대화를 이끌지에 따라 한국형 복지국가의 미래는 바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