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법안만 보면” 모른다. 시민, 기업, 정부기관 등 복잡한 이해관계의 충돌을 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법안을 읽고 나면, 우리 삶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좀처럼 그려지지 않는다. 법안의 ‘제안이유 및 주요내용’만 봐도 그렇다. 길어야 2장이다. 대부분 1장 반에서 끝난다. 본래 의회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모인 정치 생태계다. 하지만 현재의 법안 시스템이 ‘다양한 국민’의 이해를 잘 대변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충분한 사전 검토가 없으니 국회는 ‘발의는 쉽고 숙의는 어려운’ 공간이 됐다.
부실 법안이 그대로 시행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검토보고서가 있다지만, 약간의 통계와 관련 협회·정부 부처 등 찬반 입장을 나열할 만큼 우리 사회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상임위 단계에서도 전문위원 등 법안을 검토할 인력도 한정돼 있다. 사회적 관심을 반영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근본적인 원인을 다루기보다 처벌 등 가시적인 효과에만 집중하는 경우도 잦았다. 예컨대, ‘민식이법’은 어린이 보행사고 예방을 위해 필요한 법이다. 그러나 입법 과정에서 운전자 과잉 처벌 논란을 해소하지 못해 인터넷상 조롱의 대상이 됐고, ‘사후 입법영향평가’의 첫 법안이 되기도 했다.
법안 통과 전에도 입법영향평가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 정부 제출 법안의 경우, 규제영향분석과 부패영향평가, 법제처 심사 등 사전 검토 절차를 거쳐 다듬어질 여지가 있지만, 의원 입법은 이같은 절차를 적용받지 않는다. 의원 법안에도 위헌 가능성, 시행에 따른 소요 예산의 적정성, 사회·경제적 영향 등이 친절히 담겨야 상임위에서도 심도 깊게 토론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 현행 검토보고서에 입법조사처는 물론 예산정책처·국회도서관의 의견도 담아 보다 입체적인 분석안을 만들자는 주장도 있다.
국회도 공감대를 갖고 움직이고 있다는 점은 분명 반가운 소식이다. 여당에선 규제영향평가를 전담하는 국회 내 전문 기구를 신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회사무처의 ‘입법 규제영향분석 시범 운영 태스크포스(TF)’도 조만간 활동 결과를 발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한다는 반발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최근 국회는 선거제 개편 논의 등 정치권의 해묵은 숙제를 풀고 개혁을 논의하는 바람이 불고 있다. 이번 기회에 사전 입법영향평가 도입에 대한 적극적인 논의도 이뤄졌으면 한다. ‘누더기 법안’ 오명을 벗고 촘촘한 분석을 담은 ‘두툼한 법안’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