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부 기자를 하다 보면 혼 나는 일이 다반사다. 어느 정치인이 “말 시키지 마”라며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면 ‘협상이 잘 안 되고 있구나’를 짐작한다. “한 말을 또 하게 해!”라고 하면 ‘오늘 협상은 결렬되겠구나’를 예측하게 된다.
정치인도 사람이다. 매일 썩 좋지 않은 얘기들로 질문하는 기자들이 반가울 리 없다. 어떤 정치인은 핵심을 찔렸다 싶을 때 한쪽 눈썹이 찡그려짐과 동시에 몸이 살짝 움직인다. 또 어떤 정치인은 정면으로 쳐다보며 눈으로 욕을 한다. 물론 식사 자리에서 “우리 딸 곧 결혼해!”라고 자랑할 때는 영락없이 따뜻한 아버지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이들의 표정은 행보 하나하나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최근 화두가 됐던 것이 국민의힘 당권주자 김기현 후보와 나경원 전 의원과 깜짝 오찬 회동을 한 뒤 나온 두 사람의 표정이었다. 이들은 기자들 앞에서 손을 맞잡았다. 행동은 분명 ‘연대’인데, 표정은 시종일관 굳어있었다. 오죽하면 “가정법원에서 이혼 서류에 도장 찍고 나온 부부 같다”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러한 탓에 ‘소극적 연대’니, ‘억지로 손을 잡은 것이 아니냐’라는 등의 많은 정치적 해석이 쏟아졌다. 경쟁자 안철수 후보는 “사진에 나타난 (두 사람의) 표정에 대해 여러 해석들이 있지 않나”라며 가뿐히 응수하기도 했다.
그만큼 표정은 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려주는 척도다. 8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두 번째 연두교서를 발표할 때 그의 뒤에 나란히 앉은 상하원 의장의 표정은 극명히 달랐다. 해리스는 연신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며 기립 박수를 쳤지만, 공화당 소속 매카시 의장은 뚱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군 채 앉아 있었다. 공화당 의원들은 고성을 지르며 야유했다. 바이든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가를 반복하며 ‘오뚝이’(happy warrior)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재선 도전이 임박한 바이든 대통령과 이를 견제하려는 공화당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났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저들은 질문하는 내 표정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거울을 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다. 자식 뻘 되는 기자가 안쓰럽게 보일 수도, 반대로 ‘무슨 저렇게 듣기 싫은 소리만 골라서 할까’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