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이 이날 은행의 과점 피해와 예대마진 축소를 직접 언급한 것은 ‘은행은 공공재’라는 평소 인식과 ‘이자장사로 인한 역대급 성과급 잔치’에 대한 부정적 의식이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의 비판에 금융당국은 즉각 은행의 지배구조는 물론 이자체계와 과점체제까지 메스를 들이대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 몇 년전만 하더라도 몸집을 키워 ‘메가뱅크’로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겠다던 금융당국의 스탠스가 정권이 바뀌면서 스몰은행 활성화로 바뀔 태세다.
금융권의 대대적인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 있는 ‘초대형 태풍’이 불어닥칠 수도 있다. 하지만 신뢰가 바탕인 은행업의 본질 상 인터넷은행 초창기처럼 모객이 쉽지 않은 데다 일부 분야에 한정된 은행이 얼마나 시장 판도를 흔들 수 있을 지는 의문이라는 시각도 제기된다. 또 대통령이 주주가 있는 민간 사의 수익구조인 이자까지 개입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진행한 ‘비상경제민생회의 관련 브리핑’에 참석해 5대 은행 중심의 은행권 과점 체제를 경쟁 체제로 바꾸는 방안을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이 원장은 전날 내부 임원회의에서 5대 은행의 과점 체제 완화 방안을 임원들에게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경우 여·수신 시장에서 5대 시중은행의 점유율이 워낙 높다 보니 가격 책정 시 과점적인 게임을 하는 측면이 있다”면서 “완전 경쟁을 해야 효율적인 가격이 가능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다양한 제도나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은행이 ‘과점 체제’로 인해 이자장사에만 몰두한다며 ‘완전경쟁 체제로의 전환’해 과도한 예대마진을 개선하겠다는게 정부의 복안이다.
금감원은 라이센스 세분화, 인터넷전문은행 확대, 핀테크의 금융업 진출 도입 등을 검토하고 있다. 특히 기능별로 은행 라이센스를 쪼개는 일종의 ‘스몰라이센스’ 도입을 경쟁체제를 깰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으로 보고 있다.
은행업의 스몰라이센스가 도입되면 지주 산하가 아닌 독립계 은행이 시장에 나올 수 있다. 현재 은행업은 단일 인가다. 인가 단위를 나눠 특정 분야에 경쟁력 있는 특화은행을 활성화하면 과점 체제를 깰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챌린저뱅크’ 모델도 눈여겨보고 있다. 챌린저뱅크는 기존 대형은행의 지배적인 시장 영향력에 도전하는 소규모 특화은행이다. 전통 은행과 달리 기능별 업무가 뚜렷하고 투명한 수수료 정책 등을 펼칠 수 있다. 중소기업을 위한 각종 여수신 상품을 판매하는 영국의 아톰뱅크가 대표적인 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달 중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통해 논의할 예정”이라며 “백지 상태에서 모든 가능성을 올려놓고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예대마진 축소까지 언급하자 은행권은 당혹스러운 분위기가 역력하다. 이미 인터넷 은행의 등장으로 과점 체재가 깨진 지 오래인데, 억울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은행권 관계자는 “5대은행에 거래가 몰려있긴 하지만 소비자들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면서 “인터넷 은행에 대한 자율규제로 과점 체제가 깨진 지 오래”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금리가 올라가는 시기에는 어쩔 수 없이 예대금리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는데, 무턱대고 줄이라고하니 답답할 뿐”이라고 하소연다. 이어 “더 줄였을 때 은행 건전성이 나빠지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는 더 큰 위험”이라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은행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정부의 시장개입에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은행에 사회적 기여를 하라는 뜻에는 동의하지만 정부가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결국 (예대마진 높아진 것의) 원인은 정부 규제였다”면서 “지금은 관치금융이 맞고 이 같은 상황의 원인도 관치금융 때문”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