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성’은 유튜브가 동영상 업로드 채널을 넘어 콘텐츠 화수분으로 거듭난 비결입니다. 동시에 많은 부작용을 낳는 요인이기도 하죠. 이러한 문제점을 인지한 유튜브는 창작자들의 창의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안을 마련해왔습니다. 저작권 관리를 위해서는 저작권 침해 신고 제도를 운용하고 저작권 침해 여부를 가릴 수 있는 관리 도구들을 사용자에 제공하고 있죠.
자동 콘텐츠 식별 시스템인 ‘카피라이트 매치 툴’과 ‘콘텐츠ID’는 대표적인 관리 도구입니다. 카피라이트 매치 툴은 다른 동영상과 일치하거나 일치할 가능성이 있는 동영상을 식별합니다. 콘텐츠ID는 저작권을 식별할 수 있는 시청각 참조 파일을 통해 저작권 보유자가 독점권을 보유한 콘텐츠를 찾아주죠. 다만 콘텐츠ID는 영화 스튜디오, 음반사, 협회 등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모든 이용자가 사용 대상은 아닙니다. 콘텐츠ID 소유권을 주장하기 위해선 콘텐츠가 대량으로 재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죠.
크리에이터가 이러한 도구를 활용해 자신의 저작물을 베끼거나 무단 복사한 콘텐츠를 찾아내면, 세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습니다. △신고로 영상을 아예 내리게 하거나 △내 콘텐츠를 활용한 영상에 광고를 달아 수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 △콘텐츠가 어떻게 퍼지는지 주요 시청 국가와 시청 시간 등에 대한 정보를 얻어 유튜브 채널 운영에 참고 자료로 활용할 수도 있죠. 저작권을 보호하면서도 개방형 플랫폼이라는 기조를 유지하기 위한 고민 끝에 나온 조치로 보입니다.
실제로 유튜브 저작권 투명성 보고서에 따르면 90% 이상의 콘텐츠ID 소유권 주장자는 ‘수익 창출’ 조치를 선택했는데요. 2019년 수잔 워치스키 유튜브 최고경영자(CEO)는 “유튜브는 본질적으로 개방형 플랫폼”이라며 “대신 지난 몇 년간 유튜브 콘텐츠 정책과 시스템에 상당한 투자를 쏟아부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번 영상 표절 사태는 유튜브 도구들이 아직 문제 영상을 100% 걸러낼 수 없다는 걸 증명합니다. 유튜브의 저작권 보호 정책은 불완전하죠. 몇 가지 AI 프로그램만 있으면 영상을 빠르게 베낄 수 있는데요. 목소리를 바꾸는 등 약간의 변환만 거치면 유튜브는 영상의 표절 여부를 감지하지 못합니다.
김춘삼은 앞서 인터뷰에서 유튜브 수익 경로에 대해 답하며 유튜브 채널을 분석해주는 AI 플랫폼, 음성 파일을 텍스트로 변환해주는 프로그램, 그리고 AI 작문 플랫폼 3가지를 활용해 노력을 들이지 않고 손쉽게 영상을 제작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AI 프로그램들에 기존 유튜브 콘텐츠에서 추출한 음성 파일을 입력하면 금방 대본이 제작된다는 거죠. 피해 유튜버들이 영상을 비교해보자 몇몇 단어를 빼고는 대본이 거의 비슷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유튜버 어비는 이와 관련해 “유튜브의 경우 같은 대본의 영상을 다른 목소리로 읽어 내보낼 경우 이를 걸러내지 못한다”고 지적했는데요. 기존 영상에서 자막 파일을 추출해 내용이 유사하더라도 읽어주는 목소리만 다르면 이를 감지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구글의 저작권 관리 도구가 화면, 오디오, 멜로디 등은 탐지하지만 어떤 말을 하는지까지는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로 보입니다.
앞서 피해를 주장한 유튜버 리뷰엉이는 과학 유튜브 운영 이전 영화 리뷰 유튜브를 운영할 때도 같은 일을 겪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제목과 섬네일을 그대로 카피하고 대본까지 똑같이 베껴서 훔쳐가는 XXX들이 엄청나게 많이 생겼었다”며 피해자도 많았다고 설명했죠. 스크립트는 아직 유튜브의 사각지대로 남아있는 셈입니다.
유튜브 저작권에 관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이번처럼 유튜브 영상 간에 불거진 저작권 문제가 있는가 하면, 유튜브 밖 창작물을 위법하게 이용한 영상들의 저작권 문제도 여러 차례 도마 위에 오른 적이 있죠.
영화 줄거리를 그대로 나열하며 영화 영상까지 그대로 사용하는 일부 유튜버들은 대표적인 골칫거리입니다. 영화사, OTT 매체와 유튜버가 정식 계약을 맺고 콘텐츠를 홍보하기도 하지만, 일부 유튜버들이 별도 논의 없이 영상을 짜깁기해 영화 채널을 운영하고 있어 문제가 되는 건데요. 이들이 제작하는 10분 내외의 줄거리 소개 영상은 ‘패스트 무비’라고 부릅니다.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논란입니다. 지난해 12월 일본 도쿄지방재판소는 유튜버 3명에게 총 5억 엔(약 48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이들은 패스트 무비 54편을 제작한 혐의를 받았는데요. 재판소는 이들로 인해 13개 영화사가 입은 피해가 20억 엔(약 192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이번 사태에서 다른 유튜버들의 콘텐츠를 모방해 구설에 오른 김춘삼은 3시간이면 영상 한 편의 대본을 완성했다고 얘기했습니다. 이렇게 제작한 영상을 일주일에 한 편씩 공개해서 한 달에 약 300만 원의 수익을 벌어들였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공들여 만든 영상을 표절해 더 빠르게 큰 수익을 창출한다면,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창작자들의 생산 동력이 감소하는 건 자명한 일입니다. 이번 사태에 강력한 대응을 예고한 리뷰엉이는 “이 카피캣들을 그대로 두면 이 생태계가 어떻게 무너지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며 분노를 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