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출근길, 눈으로는 넥타이를 고르며 급하게 와이셔츠를 입다가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무언가 느낌이 이상했지만 바빴기 때문일까? 무작정 단추를 끝까지 다 채워본다. 마지막 단추 하나가 남는다는 사실을 그제야 인정하고는 다시 푸는 작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첫 단추와 첫 구멍을 눈으로 확인 후 다시 끼운다.
정부가 정책을 내놓는다. 시작부터 뭔가 삐걱거렸지만 밀어붙인다. 시행 이후에도 잡음이 계속 들린다. 아예 문제가 있다는 항의도, 지적도 나온다. 현장에서는 정책을 무시하는 상황까지 발생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어쨌든 시작한 정책이다.
지난해 12월 2일 14년 만에 부활한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애초 그해 6월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업주 반발 등의 이유로 시행 3주를 앞두고 유예됐다. 지역도 세종과 제주만으로 축소되면서 반쪽짜리 제도로 전락했다. 정부의 이런 결정은 정책 수행자인 업주와 소비자에게 혼란을 불러왔고 제도의 신뢰를 떨어뜨렸다.
시행 전부터 시민단체는 일부 지역에서만 시행되는 것에 대한 제도의 미흡함을 지적했고, 업주는 형평성을 들며 시행 거부 의사를 표명했다.
시행 이후에도 소비자는 컵 반납의 불편을 호소했고 제주에서는 보이콧을 선언한 매장도 적지 않았다. 점주는 비용이 적지 않게 들어가는 것에 부담을 느꼈고 또 가격 인상으로 비칠까 봐 아예 외면하는 매장도 생겼다. 정책 시행에 대한 준비가 미흡했다는 의미다.
기자가 만난 세종의 한 카페 업주는 제도가 있다는 사실은 알지만, 시행 의지조차 없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행과 관련한 홍보 포스터는 물론 제도를 설명한 문구, 직원의 안내도 없어 마치 제도의 대상 자체가 아닌 듯한 모습이었다.
이 제도는 지난 2003년에도 시행됐었지만, 회수율이 40%에 불과해 시행 6년 만인 2008년 폐지된 바 있다. 정부가 시행 한 달 차에 추정한 컵 회수율은 20~30%다. 정부는 회수율이 점점 올라오고 있다고 말한다. 정부의 중장기 기대 회수율은 90% 이상이라지만 녹색연합 홈페이지에 올라온 '쓰레기통으로 전락한 일회용컵 수거함' 사진을 보면 '과연'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르는 것은 기자뿐일까 싶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주위에서 잘못 끼워졌다고 지적까지 해준다. 잘못 끼워진 단추는 풀어야 한다. 규제부처가 어설프게 산업 진흥 부처를 흉내 낼 필요도 없다. 꼭 필요한 규제라면 철저한 준비로 불편함을 최소화하면서 제도 도입 취지를 살릴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