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이 오락가락하는 모양새를 보이면서 서울 강남권 재건축 사업 추진 단지들도 극명한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일부 단지의 경우 규제완화를 빌미로 사업 속도를 높이는 단지가 등장하는가 하면 또 다른 단지는 부담금 증가와 사업성 악화로 정비사업을 접는 단지도 나오고 있다.
20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 일대 노후 단지 중 재건축 사업이 더딘 단지는 일제히 사업 속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방이동 대림가락(방이대림)은 지난 9일 송파구청으로부터 재건축 조합설립인가를 획득했다. 이 단지는 지난해 4월 추진위원회 승인 이후 약 10개월 만에 조합설립에 성공했다. 총 925가구 규모 대림가락은 1985년 준공돼 재건축 연한(30년)을 훌쩍 넘겼다.
대림가락 단지 길 건너편에 위치한 1316가구 규모 오금동 오금현대도 재건축 사업 속도를 높이고 있다. 이곳은 앞서 서울시가 지원하는 민간 주도 개발사업인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 1호 사업장으로 선정됐지만, 임대아파트 비율 문제와 주민 반발 등으로 민간 재건축으로 선회했다.
두 단지는 최근 집값 하락의 골이 주변 단지들보다 더 깊다. 대림가락 전용면적 84㎡형은 지난달 28일 직전 신고가보다 3억9000만 원 내린 12억8000만 원에 거래됐다. 오금현대 전용 84㎡형의 최근 실거래가는 지난달 17일 기록한 14억5000만 원이다. 이는 같은 평형 2021년 10월 신고가인 18억9000만 원보다 4억4000만 원 낮다.
반면 인근 한양3차와 가락삼익맨숀 전용 84㎡형은 모두 2021년 16억 중반에 거래된 이후 매물이 잠겼다. 방이동 H공인 관계자는 “가락삼익과 한양3차 등 재건축이 착착 되는 곳은 기대감이 크니까 집주인들이 안 내놓은 지 오래됐다”고 했다.
이 밖에 송파구에선 최근 올림픽선수기자촌과 한양1차, 풍납미성, 풍납극동 등 4개 단지가 무더기로 안전진단을 통과하는 등 재건축 사업에 불이 붙은 모양새다. 재건축 추진단지가 특히 많은 강남지역에서도 송파구는 노후 단지가 많아 재건축 바람이 유독 거세다. 부동산플래닛에 따르면 송파구 내 136개 단지 중 재건축 연한 초과 단지는 25.7%(35개)로 서울 내 2위 수준이다.
하지만 송파구 내 다른 단지에선 부동산 경기 침체와 사업성 부족, 공사비 상승 등을 이유로 정비사업을 포기하는 단지도 나오고 있다. 송파구 거여1단지는 다음 달 11일 임시총회를 열고 리모델링 사업 중단을 묻는 투표를 진행한다.
이와 관련, 서울시 리모델링주택조합협의회 관계자는 “단순 사업성 부족이 아니라, 현재 조합에서 일반적인 리모델링 조합 절차가 아닌 지역주택조합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하면서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설명했다.
또 송파구가 아닌 서초구와 강남구 일대에서는 공사비 급등에 따른 사업성 악화 우려로 시공사가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면서 공사가 중단되는 등 부침을 겪고 있다. 일반적으로 정비사업은 집값 상승기에 사업 속도가 빠르다. 집값이 상승해야 분양가가 오르고, 조합 분담금 줄어 사업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최근 집값 내림세가 지속하면서 분양가는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공사비는 오르면서 차질을 겪는 것이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집값이 가장 비싸 정비사업 수익성 걱정이 없었던 강남에서도 사업이 삐걱댈 정도로 공사비가 올랐다”며 “지금 재건축이나 리모델링을 시작하는 곳은 기존 정비사업 진행 단지보다 더 오래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재건축 시장 혼란이 계속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주택시장 침체가 이어지면서 결국 경제성 분석이 우선될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는 일반분양 물량이 많은 대단지나 금융 조달이 수월한 곳 위주로 선별적 정비사업이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