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씨는 피해자에게 트라우마를 안기고도 반성 없는 작태를 보였습니다. 수차례에 걸친 판결문 기록들은 이를 말해줍니다. 정순신 변호사 역시 가담했습니다. 정 씨가 조금이라도 덜 처벌 받고, 학업에 신경 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죠.
정 씨는 기숙사 같은 방에서 지내는 피해자 A 씨의 출신 지역을 이유로 수 개월간 언어폭력을 가했습니다. A 씨는 “빨갱이”, “제주도에서 온 돼지X끼” 등의 표현을 사용하고 “왜 인간이 밥 먹는 곳에 오나. 더러우니 꺼져라” 등의 말을 들어야 했죠. 정 씨와 피해자가 재학했던 모 자율형 사립고의 학교 폭력 담당 교사는 학폭 소송 판결에서 “횟수를 세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이런 말들을) 자주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친구들이 “A를 왜 막 대하냐”고 문제를 제기해도 “쟤는 그래도 된다”던 정 씨의 언어폭력은 입학 3개월째 시작돼 2학년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정 씨는 자신의 폭력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는 A 씨가 2018년 3월 학교 당국에 사건을 신고하자 정 씨에 강제전학, 서면 사과, 학생과 학부모 특별교육 이수 등을 조치했지만 정 씨는 반발했습니다. 강제 전학 조치에 이의를 제기해 사건을 대법원까지 끌고 갔죠.
정 씨는 서면 사과도 A4 용지 3분의 1 분량으로 제대로 된 서식 없이 써 오고, 학업이 중요하다며 학교봉사는 유예하는 등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재판에서는 “원래 친하게 지내던 사이로, 평소 출신 지역이나 정치적인 성향에 따라 친구들끼리 자연스레 별명을 불렀고, 그 과정에서 이 사건이 발생했다”고 말했습니다. 강원도 학폭위에 학교 측을 대표해 출석했던 한 교사는 “저희는 정 군이 반성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정 씨 진술서에도) A 군 같은 경우에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는 모습을 봤다”고 밝혔습니다.
정 씨가 패소하기까지 피해자는 강원도 학생징계조정위원회(조정위)부터 춘천지방법원 1·2심, 그리고 대법원 판결에 이르는 긴 시간을 고통받아야 했습니다. 피해자는 지속적인 정신적 고통 속에 극단적 선택까지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졌죠.
학교 폭력 가해자인 정 씨는 서울대에 진학했습니다. 정 씨는 수능 성적만을 반영하는 정시 전형으로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서울대는 정시 전형에서도 학교 폭력 등 학생부 기록을 감점 요인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지만, 실제로 기록이 반영되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아들이 이렇게 명문대에 진학한 데에는 부모의 몫이 적지 않습니다. 정순신 변호사는 2001년 부산지검 동부지청 검사 초임으로 검찰 고위직을 역임했습니다. 당시 현직 고위직 검사였으며 법률 전문가였던 아버지의 도움으로 정 씨는 ‘끝장 소송’을 이어갈 수 있었죠. 한 고교 교사는 2018년 6월 29일 열린 강원도 학교폭력대책지역위원회 회의에서 “정 씨 부모가 책임을 인정하는 것을 두려워해서 2차 진술서는 부모가 전부 코치해서 썼다”며 “부모가 많이 막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교사는 “1차 진술서를 썼는데 바로 부모 피드백을 받아서 그렇게 쓰면 안 된다고 해 다시 교정을 받아오는 상태다. 부모를 만나고 오면 다시 바뀌는 상태”라고 말했죠. 이즈음 정순신 변호사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인권감독관에 취임했습니다.
‘아빠 찬스’가 과연 합법적인 수준이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정 씨의 발언 때문이죠. 정 씨의 행정소송 판결문에 기록된 당시 학교폭력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한 목격자는 정 씨가 “검사 직업은 다 뇌물 받고 하는 직업”이라며 “아빠는 아는 사람이 많은데 아는 사람이 많으면 다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말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정 씨는 “판사랑 친하면 재판에서 무조건 승소한다”고 말하기도 했죠.
엘리트주의·특권층 의식이 다분히 드러나는 정 씨의 발언은 ‘조국 사태’를 떠오르게 합니다. 앞서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자녀 조민 씨가 부모의 명성 덕에 논문, 인턴 등의 ‘스펙’을 수월하게 쌓아 의전원에 입학할 수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돼 청년층의 공분을 샀죠.
국민 분노가 계속되고 있는 만큼 이번 사건이 ‘제2 조국 사태’로 비화할 조짐도 보입니다. ‘학폭’에 특권층 의식 문제가 겹치며 20·30세대를 중심으로 분노가 퍼지고 있죠. 정 씨가 진학한 서울대학교 게시판에는 정 씨 부자(父子)를 질타하는 대자보가 붙었습니다. 아들 비호에 성심을 쏟던 정순신 변호사의 행태와 부모의 조력으로 서울대에 진학한 정 씨의 모습에 일부 네티즌은 “허탈하다”고 반응했죠. 일부 대학생들은 “학교 폭력을 했는데도 명문 대학에 갈 수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2019년 조국 사태 이후 약 4년 만에 반복된 ‘아빠 찬스’ 논란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계급이 건재하다는 걸 확인해준 셈입니다.
후보 부실 검증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습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검증 과정에 문제가 있고, 어디서 못 걸렀는지 철저히 따져야 한다”고 말했는데요. 인사 검증을 담당했을 기관들은 모두 책임 회피 중입니다. 대통령실은 대변인을 통해 “(사건 언론 보도가) 익명으로 나와 관계자가 아닌 사람들이 알기 어려웠다”고 해명했습니다. 국회 정보위원회 야당 간사 윤건영 의원은 윤희근 경찰청장이 “국수본부장 임명 과정에서 경찰청은 인사검증 권한이 없고 검증 결과를 보고받을 뿐”이라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정순신 변호사 관련 논란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정순신 아들 방지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됩니다. 교육위원회 소속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8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최상위 아빠 찬스’에 국민이 분노하는 상황”이라며 대입 정시에 학교폭력 연루 여부 등 인성 평가가 반영되도록 하고, 고위공직자 임명 시 자녀의 학교폭력 전력도 조회하는 내용 등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설명했는데요. 윤석열 대통령 또한 정 씨의 학폭 소송전 관련 보고를 전해 듣고 분노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26일 브리핑에서 “대통령은 학폭이 자유롭고 공정하게 교육받을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매우 엄중하게 보고 있다”고 설명했죠. 학교 폭력에 대한 엄중한 관리와 철저한 인사 검증에 대한 국민 요구가 커지는 만큼, 정치권의 귀추에 이목이 쏠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