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마음속 쌍용차를 떠나보내며

입력 2023-03-02 05:00수정 2023-03-02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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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 산업부 부장대우

 커오던 시절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1984년, 온 가족이 털털거리는 거화 코란도에 몸을 구겨 넣고 틈만 나면 여행을 다녔습니다. 요즘처럼 멋진 캠핑장비는 딱히 구할 길이 없었지요. 그저 집에서 쓰던 냄비와 밥그릇, 숟가락만 챙겨도 행복했으니까요. 그 시절 6인승 코란도는 실내가 정말 좁아터졌습니다. 뒷자리에 올라타면 서로 무릎을 맞대고 앉아야 했습니다. 그래도 한없이 행복했습니다. 자동차라는 존재 자체가 귀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1993년, 드디어 면허증을 손에 쥐었습니다. 그리고 처음 운전을 배웠던 차가 동아 코란도였습니다. ‘거화’가 동아그룹 품으로 넘어갔지만 차 이름 ‘코란도’는 그대로였습니다. 정말 다행이었지요. 당시 기준으로 동아 코란도는 정말 조용했습니다. 일본 이스즈(ISUZU)에서 가져온 선박용 디젤 엔진은 한없이 부드러웠고 잔 고장이 정말 없었거든요.

1999년, 처음 내 이름으로 그리고 내 손으로 샀던 차가 쌍용 ‘뉴 코란도’였습니다. 메르세데스-벤츠에서 설계도를 얻어온 OM662 자연흡기 엔진은 정말 ‘명품 엔진’이었습니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수습 기자에게 뉴 코란도는 과분한, 아니 버거운 차였습니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 누릴 수 있는 대부분을 포기해도 좋을 만큼, 코란도는 귀한 존재였거든요.

그렇게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쌍용차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수십 번의 ‘바꿈질’을 반복하는 사이에도 쌍용차는 절대 버리지 않았습니다. 꽤 괜찮은 수입차를 타던 시절에도 주차장에는 늘 쌍용차가 한 대는 있었으니까요. 주위에서 “그 털털거리는 쌍용차를 왜 그리 애지중지하느냐”며 핀잔을 줄 때마다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내 선택의 당위성’을 강조했습니다.

쌍용차에 대한 애증은 이유가 있습니다. 이들은 경영난으로 회사가 넘어질 때마다 꿋꿋하게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는 곧 ‘기적’에 가까웠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회사가 어려울 때는 고객이 사비를 털어 ‘쌍용차 힘내라’는 신문 광고를 내기도 합니다. 쉐보레나 르노는 죽었나 깨어나도 가질 수 없는, 마니아 고객이지요.

한동안 부침을 겪었던 쌍용차는 지난해 새 주인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일어섰습니다. 때마침 ‘토레스’라는 꽤 괜찮은 차도 시장에 내놓았지요. 처음 본 차였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차 곳곳에 그 옛날 코란도와 무쏘, 렉스턴으로 이어지는 쌍용차의 이미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어렵게 다시 일어선 쌍용차가 이번에는 마케팅에서 제대로 헛발질을 합니다. 최근 쌍용차는 휘발유와 LPG를 모두 사용할 수 있는 토레스 ‘바이-퓨얼’ 모델을 출시했는데요. 이 차 이름을 ‘하이브리드 LPG’라고 과대 포장한 것이지요. 환경부가 규정한 ‘하이브리드’는 60V(볼트)를 초과하는 구동 축전지를 갖춘 차만 해당합니다. 구동 축전지는 말 그대로 전기모터만으로 주행이 가능한 차입니다. 구매와 유지 단계에서 혜택도 줍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쌍용차는 ‘두 가지 이상의 연료를 사용할 수 있다’라는 의미를 담아 ‘하이브리드’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진짜 친환경 하이브리드를 만들 기술력은 없으나 차 이름만큼은 하이브리드를 쓰고 싶었던 것이지요. 심지어 LPG 시스템 역시 쌍용차가 개발해 장착하는 게 아닌, 개조업체로 신차를 보내 LPG 시스템을 얹는 방식입니다. 당연히 계기판 어디에도 LPG 잔량을 확인할 수 있는 게이지 같은 것은 없습니다. 하이브리드 LPG는커녕 ‘LPG 개조차’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쌍용차는 이를 두고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앞으로 진짜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개발하면 이를 ‘전기차’라고 과대 포장할 기세입니다. 쌍용차 연구원들이 오랜 기간 밤잠을 줄여가며 힘들게 개발한 토레스를 어설픈 마케터들이 망가트린 셈이지요. 위기 때마다 “우리는 흔들릴 자격이 없다”라며 재기를 다짐하던 쌍용차의 꿋꿋함은 사라졌습니다. 그 자리에는 어설프고 얄팍한 상술만 남았습니다.

이제 수십 년 동안 마음속 한편에 꾹꾹 담아놓고 살아온 쌍용차에 대한 애증, 그리고 수많은 추억을 덜어내려고 합니다. 그 옛날 “대한민국 1%”를 외치며 프리미엄 SUV 마케팅의 정수를 보여주었던 쌍용차 임직원에게 묻습니다.

“당신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습니까?”

jun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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