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이 된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의 부인 고(故) 이정화 여사 앞에는 늘 '조용한 내조'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이 여사는 전형적인 현대가(家) 며느리들과 같이 평생 남편을 묵묵히 뒷바라지했다. 다른 재벌가에 비해 유난히 외부 활동을 자제하며 남편을 내조했던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부인 고 변중석 여사의 모습과 꼭 닮았다. 현대가 사람들은 이 여사가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한 몫 했다고 평가한다.
#2
2001년 은퇴를 선언하고 2005년 지상욱 전 국회의원과 결혼한 배우 심은하는 남편의 국회 입성을 적극 도왔지만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다. 각종 유세 현장에 나타났던 스타들과 달리 단 한 번도 유세 현장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낼 정도였다. 지 전 의원이 당선돼 지역구 인사를 돌 때도 동행하지 않았다.
지난해 5월10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9개월 가량 지났다. 그 동안 김 여사의 행보를 돌아보자. 취임식 당일만 해도 김 여사는 공식석상에 등장했지만 윤 대통령과 한 걸음 떨어져 걷는 등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본 많은 이들은 "김 여사가 약속한 대로 당분간 대외활동엔 나서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당시 한 여론 조사에서도 김 여사의 적극적 공개 행보보다는 조용한 내조를 원하는 국민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66.4%가 '조용히 내조에 집중해야 한다'고 답한 반면, '기존 영부인처럼 적극적인 역할에 나서야 한다'는 응답은 24.2%에 그쳤다. 그 즈음 박주선 대통령취임 준비위원장도 “저희들도 조용한 내조를 하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윤 당선인도 그런 말씀을 늘 하셨다"고 확인시켜줬다.
하지만 이도 잠시. 곧이어 현충일 추념식에도 윤 대통령 부부가 나란히 참석해 퍼스트 레이디 행보로 기조를 바꾸는 건 나니냐는 물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 즈음 김 여사 팬클럽에선 대통령실 사진을 공개해 한바탕 소란도 일었다. 이후에도 봉하마을 방문 시 김 여사가 과거 운영했던 회사 코바나콘텐츠 출신 직원이 동행한 것은 물론 대통령실에 채용,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순방에 한 비서관 부인이 함께해 '비선 동행' 논란이 계속됐다. 취임 후 2달도 안돼 일어난 일들이다.
특히 최근 들어선 ‘1일 1행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공개 행보가 도드라졌다. 국민의힘 여성 의원, 대통령실 직원, 국무위원 배우자 등을 서울 한남동 관저에 초청하는가 하면 윤 대통령 없이 단독 행사도 진행 중이다.
이쯤 되니 '조용한 내조'가 언제였는지 잘 모르겠다. 언제 부터인가 언론들은 "조용한 행보 끝났다"는 보도를 쏟아냈지만, 필자는 처음부터 조용한 내조가 있었나 싶다.
김 여사의 적극적인 공식 행보 자체를 문제시하는 건 아니다. 다만, 20대 대선 당시 각종 의혹으로 '최대 부인 리스크'로 부각되자 김 여사 스스로 내놓은 대안이 '조용한 내조'다. 윤 대통령 역시 배우자를 보좌하는 제2부속실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두 사람의 약속을 믿었던 국민들과의 신뢰 문제라고 강조하고 싶다. 그 와중에 다수 여론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6명 이상이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에 대한 특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