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금리 시절 스타트업 예금액으로 장기 채권 사들여
지난해 급격한 금리 인상에 막대한 손실
예금주 60%가 개인 아닌 기술ㆍ헬스케어 기업
기술주 모멘텀 약화에 예금 인출 빨라진 점도 원인
SVB가 유동성 확보를 위한 불가피한 미 국채 매각으로 18억 달러(약 2조3814억 원)의 손실을 봤다고 발표한 시점은 8일(현지시간) 오후. 이후 주가가 폭락하고 뱅크런이 발생하자 금융당국은 특단의 조처를 내린다.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이 SVB를 폐쇄한 데 이어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파산 절차에 착수한 것. 이 모든 건 불과 44시간 만에 이뤄졌다.
12일 미국 CNN방송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등 주요 외신은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고금리 정책이 이 은행에 직격탄을 쐈다고 분석했다.
일반적으로 금리 상승은 대출 사업을 하는 많은 은행에 혜택을 준다. 하지만 SVB의 경우 금리가 오르면 오히려 사업이 손상되는 구조를 지녔다.
일례로 과거 스타트업들은 기업공개(IPO)로 자금을 충분히 조달할 수 있었던 만큼 예금 거래에 비해 대출은 활발히 하지 않았다. 대출 수요가 적은 상황에서 SVB가 자금을 운용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예금액을 주택담보부증권(MBS)과 같은 유가증권 매입에 사용하는 것이었다. 매입 당시만 해도 ‘제로(0)’에 가까운 초저금리 시대였던 터라 SVB는 공격적으로 장기 채권을 사들였다.
하지만 지난해 금리가 갑자기 오르기 시작하면서 채권 가격은 급락했고 SVB는 막대한 손실을 보게 된다. 210억 달러 상당의 전체 채권 포트폴리오 수익률은 평균 1.79% 수준이었다. 반면 현재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4%에 육박한다. 채권 가격과 금리는 반대로 움직인다.
게다가 금리 인상으로 불어난 차입비용은 SVB에 도움이 됐던 기술주의 모멘텀까지 약화했고 동시에 벤처캐피털마저 고갈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스타트업들은 SVB에 예치했던 현금을 인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됐다.
결과적으로 SVB는 고객의 예금 인출 속도가 빨라지는 와중에 채권에서 실현되지 않은 손실 더미에 앉게 됐고, 채권의 대량 손실 매각을 발표함으로써 시장 패닉을 촉발하게 됐다. 다른 상업은행과 달리 개인 예금보다 스타트업 예금 비중이 더 컸던 것도 SVB 발목을 잡았다. 지난해 말 기준 SVB 예금잔고에서 기술과 헬스케어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60%에 달했다.
오안다증권의 에드워드 모야 선임 애널리스트는 “기술이나 가상자산과 같이 현금이 부족한 산업에 묶여 있는 소규모 은행들은 앞으로 힘든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며 “월가의 모든 사람은 연준의 금리 인상 조치가 결국 무언가를 깨뜨릴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지금으로선 작은 은행들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