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영 국제경제부 기자
CNBC의 아르준 카르팔 중국 특파원은 “네덜란드가 미·중 전쟁 중심에 섰다”며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슈라이네마허 장관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미국의 압박을 부인하며 “이번 결정은 일방적인 것이었고 주고받는 거래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서한에도 “네덜란드의 기술적 리더십 유지를 목표로 한다”는 문구가 명시됐다. 미국의 편에 선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자국 이익만 따졌다는 것이다. 중국을 의식한 발언이든 아니든 네덜란드는 본인들의 입장만큼은 분명히 했다.
네덜란드의 공식 발표에 이제 시선은 한국을 향한다. 미국은 수출통제와 관련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중국 내 한국기업들에 1년의 유예를 준 상태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이달 초 보고서에서 “한국이 수출통제 협정에 가입해야 한다”며 우리 정부를 압박했다. 앨런 에스테베스 미 상무부 산업안보 차관은 유예 기간이 끝나면 삼성과 SK의 중국 내 반도체 생산에 상한선을 둘 것이라고 엄포도 놨다.
유예는 연내 끝난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이렇다 할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애매하게 머뭇거리지 말아야 한다. 미국과 함께할 거라면 유예가 끝나기 전에 서둘러 수출통제에 합류함으로써 양국 관계 강화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중국 눈치가 보여 합류가 망설여질 수 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게 아니라 실익을 따져야 한다. 중국 보복이 우려되면 그걸 상쇄할 수준의 전제조건을 미국에 요구해보는 건 어떨까.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새 협상 테이블을 차리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겠다. 유럽연합(EU)을 보라. IRA에 그린딜로 응수하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을 백악관으로 불러 핵심광물 무역협정을 제안하지 않던가.
뭐가 됐든 우리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K칩스법 통과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능동적이고 선제적인 움직임을 보여줄 때다. 내달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 혹은 그 전까지 결단과 성과를 기대해보겠다.kodae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