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내 입주를 앞둔 단지 곳곳에서 지연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조합과 건설사 사이 공사비 갈등으로 입주가 지연되거나, 완공 이후에도 법적 다툼으로 입주예정자만 피해를 보고 있다. 앞으로도 조합 내·외부 갈등으로 추가 입주 지연이 불 보듯 뻔한 곳만도 여러 곳이다. 하지만 법적 장치 미비와 행정당국의 권한 한계 등으로 중재 수단도 마땅치 않아 입법 보완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5일 본지 취재 결과 서울 강남구 개포 프레지던스 자이(개포 자이) 와 양천구 신목동 파라곤은 입주가 중단됐다. 개포 자이는 조합과 단지 내 유치원과 보상 관련 소송으로, 신목동 파라곤은 조합과 시공사 사이의 100억 원 규모 공사비 갈등으로 각각 입주 절차가 멈췄다.
개포 자이 입주 지연은 조합과 단지 내 유치원 간 갈등 소송전 때문이다. 유치원이 재산권 훼손 이유를 들어 단지 관리처분계획 취소 청구 소송을 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오는 24일 결정 전까지 입주 중단을 결정했다. 이달 말까지 개포 자이 입주 예정 가구는 약 400여 가구로 추산된다.
양천구 신목동 파라곤은 조합과 건설사 간 공사비 증액 문제로 입주가 막혔다. 지난달 동양건설산업은 원자재 가격 상승을 들어 100억 원 규모 공사비 증액을 요구했지만, 조합이 이를 거부하자 유치권 행사에 나서면서 입주가 막혔다.
두 사례의 원인은 다르지만 모두 입주예정자가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담당 구청 등 행정당국은 법적 판단의 영역인 만큼 개입할 수 없다는 원칙론만 되풀이하고 있다. 개포 자이 입주 지연과 관련해 강남구청 관계자는 “법원 준공인가 처분 효력 정지 결정은 즉시 효력이 발생하므로 구청은 법원 결정에 따라야 하는 상황”이라고 답했다.
입주 지연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마저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엄정숙 법무법인 법도 변호사는 “입주 지연에 따른 손해배상 규정은 있지만, 책임 소재는 따져봐야 한다”며 “입주 지연 이유가 공사 지연이면 시공사에서 하겠지만, 지연 사유가 조합 때문이라면 조합이 배상 입주 지연 책임을 져야 한다. 이 경우 조합원의 분담금으로 배상금을 지급해야 해 손해배상 청구의 큰 실익이 없다”고 했다.
문제는 공사 중 조합과 시공사 사이에 공사비 증액 문제를 두고 대립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강남구 대치푸르지오써밋은 대우건설과 조합이 900억 원 규모 공사비 미입금 연체 이자와 원자잿값 상승분을 반영한 총 670억 원 증액 문제를 두고 다투고 있다. 이 단지는 5월 말 입주 예정이라 갈등 봉합 실패 시 신목동 파라곤 사태가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
또 서초구 래미안 원베일리 역시 시공사인 삼성물산이 공사비 1560억 원을 증액해달라고 조합에 요구했다. 조합은 한국부동산원에 공사비 증액 타당성 검증을 요청한 상황이다. 같은 구 신반포 메이플자이도 공사비 증액과 공기 연장 문제로 갈등을 이어가다 최근 증액에 잠정 합의했다.
일각에선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민간 정비사업 착공 이후 자잿값 상승 등으로 공사비가 늘면 시공사가 발주처 등에 공사비 인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내용의 유권해석을 내놓은 뒤 시장 분란이 더 늘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런 공사비 증액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국회 논의도 시작됐지만, 적용까진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월 공사비 검증이 필요한 경우 시공사가 사업시행자에게 공사비 검증에 필요한 자료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을 내놨다.
또 근본적으론 조합과 건설사 간 공사비 증액 갈등이 입주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유치권 관련 법안을 손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남근 법무법인 위민 변호사는 “다른 나라는 유치권 행사 때 등기부 등본에 유치권 행사 중이라고 기재한 다음 법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린다”며 “한국처럼 현장에서 물리적으로 막는 폭력적인 방식은 다른 나라에 없다. 이는 입주가 급한 상황을 건설사가 이용하는 것이므로 이런 물리적 제재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