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령 아닌 법률로..."조세법률주의가 원칙"
반도체 업계에 세제를 지원하는 내용의 ‘K칩스법’이 난항을 겪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세액공제 대상에 전기차와 수소 등도 포함해 한다고 주장하면서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16일 오전 조세소위원회를 열고 반도체 등 시설투자에 세제 혜택을 주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재논의하려 했지만, 민주당에서 발의한 세제 혜택 품목을 확대하는 내용의 법안을 상정할지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며 개의가 1시간 넘게 늦춰졌다.
결국 오전 소위에서는 품목 확대 등을 담은 법안은 상정하지 않았고, 오후 4시 재개하는 소위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전날 기재위 야당 간사인 신동근 민주당 의원을 비롯해 정태호, 양경숙 의원 등 민주당 의원들은 세제 혜택을 받는 국가전략기술 범위에 수소 등 탄소 중립 산업과 미래형 이동수단까지 확대하는 내용이 담긴 조특법 개정안을 일제히 발의했다.
그간 ‘국가전략기술 사업화시설’은 대통령 시행령으로 규정해왔으나, 이번엔 아예 법률로 이를 정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민주당은 무조건 전기차를 포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당 정책위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우리가 통 크게 반도체 세액 공제 상향안을 받았으니 당연히 국민의힘에서도 품목 확대에 동의해야 한다”며 “안 그러면 판이 엎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전기차에 집착하는 것은 그만큼 지원책이 절실하다는 판단에서다. 한 민주당 소속 기재위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 보급률이 지난해 4분기부터 훨씬 빠르게 늘고 있는데, 지원 안 했다간 우리가 큰일 나는 상황”이라며 “단순 기업 지원 차원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다른 민주당 기재위원도 “민주당 내에선 수소와 미래차를 지속적으로 논의해왔는데 정부 내에서 이견이 있었던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대표도 이날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EV트렌드 코리아'에 참석해 “첨단 모빌리티 관련 기술도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해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이 전기자동차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은 비슷한 내용으로 법안 이름만 바꿔 숟가락을 얹으려 한다고 지적한다. 시행령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을 굳이 법령으로 격상시켜 처리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전략 육성 산업은 앞으로도 바뀔 수 있는데 법률로 정하면 오래 걸릴 수 있을 뿐 아니라 향후 수정만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민주당 기재위 관계자는 “조세법률주의에 입각해 세율은 법안으로 처리하는 게 원칙적으로 맞다”며 “또 법안으로 처리한다고 해서 시한이 다 있는데 더 늦어지고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졸속병합 심사’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국회법 제59조에 따르면 개정법률안은 위원회에 회부된 날부터 15일 숙려기간을 거쳐 소위에서 논의하지만 여야 간사 협의로 ‘직회부’ 결정이 내려지며 발의 하루 만에 소위에 상정된 점을 지적한 것이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회의에서 “졸속병합 심사에 명확하게 위원장이 반대 의사를 표해주길 요청한다”고 촉구했다.
기재위 여당 간사인 류성걸 의원은 오전 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에게 “K칩스법은 여야 간사 간 합의해서 처리하기로 했기 때문에 오늘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고 강조했다. 신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에 대해서는 “지금 여러 안건이 법안으로 제출돼서 여야 간사 간 협의해서 오후 4시 회의에서 어떻게 할지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