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정책 운용에 여유 생겨… 자본유출 등 우려도
연준은 21일∼22일(현지시간)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예상대로 기준금리 목표 범위를 4.50∼4.75%에서 4.75∼5.00%로 0.25%포인트 올렸다.
지난달 초 미국 노동지표 발표 후 연준의 빅스텝 가능성이 커졌고, 지난 7일(현지시간)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만약 전체적 지표상 더 빠른 긴축이 필요하다면, 우리는 금리 인상의 속도를 높일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한 뒤 빅스텝 예상 확률은 80%를 넘어서기도 했다.
그러나 실리콘밸리은행(SVB)·시그니처은행 등의 잇따른 파산 여파로 결국 베이비스텝으로 보폭을 줄였다.
연준이 베이비스텝을 밟고 '더 높고 빠른' 인상도 예고하지 않으면서, 한은으로서는 미국 긴축 속도와 관련한 부담을 다소 덜게 됐다. 따라서 내달에도 2월과 마찬가지로 기준금리를 현 수준(3.50%)에서 한 번 더 동결하고 물가나 경기 상황을 지켜볼 여유가 생겼다는 분석이다.
최근 경제 지표들을 봐도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0개월 만에 4%대(4.8%)로 떨어진 반면, 수출 감소로 1월 경상수지가 사상 최대 적자(-45억2000만 달러)를 기록하는 등 경기 하강 신호가 뚜렷하다. 게다가 내달 4일 발표하는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기저효과로 크게 둔화했을 가능성이 크다. 금리 인상보다는 동결 명분이 더 크다는 얘기다.
또 국내 은행의 연체율이나 여러 건전성, 복원력 지표가 위험한 수준은 아니라는 게 한은의 분석이지만, 추가 금리 인상이 이어질 경우 취약한 저축은행이나 카드사(여신전문금융회사) 등에서부터 유동성 부족이 나타나 은행 등 전체 금융기관을 흔들 가능성이 있다.
비은행권 부동산 PF 익스포저(위험노출액) 규모가 확대된 가운데 PF대출 연체율이 오르는 등 부실 위험이 커지고 있는 점도 우려스럽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국내 통화정책은 미국 인상보다 부동산 구조조정 같은 내부 요인에 집중해 당분간 3.50% 동결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김지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 역시 한은이 추가 금리인상에 나서지 않을 것으로 봤다. 김 연구원은 "이미 국내 인플레이션은 당국이 예상하는 경로로 떨어졌고, 국내 경기는 미국과 비견하지 못할 정도로 좋지 못하다"며 "은행 사태로 인해 금융 안정에 대한 경각심도 늘어난 상태이기 때문에 여러모로 한은의 금리 인상은 2월로 종료됐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자본유출이다. 만약 4월 한은이 다시 동결을 결정하고, 연준은 점도표상 올해 전망치(5.00~5.25%)에 따라 5월 베이비 스텝만 밟아도, 미국(5.00∼5.25%)의 기준금리는 한국(3.50%)보다 1.75%p나 높아지게 된다. 한미 금리 역전 폭으로서는 최대 기록이다.
달러와 같은 기축통화가 아닌 원화 입장에서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크게 낮아지면,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외국인 투자 자금이 빠져나가고 원화 가치가 떨어질 위험이 커진다. 지난 2월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6명 금통위원 가운데 5명은 "3.75% 기준금리 가능성까지 열어둬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