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의결권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통과가 또다시 무산되면서 논란이 격화되고 있다. 벤처업계에서는 투자 유치가 활발해질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소액주주를 비롯한 시민단체에서는 시장이 오히려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한다.
28일 벤처업계는 성명서를 내고 “복수의결권은 창업자의 안정적인 경영권을 기반으로 벤처‧스타트업이 대규모 투자를 받아 유니콘기업으로 성장 할 수 있도록 돕는다”며 “다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는 법안이 통과될 수 있기를 요청 드린다”고 밝혔다.
복수의결권은 투자 유치 과정에서 창업자의 지분율이 30% 밑으로 하락해 최대주주 지위를 상실할 경우 주당 최대 10개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식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벤처업계에서는 복수의결권이 투자 유치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많은 벤처캐피탈(VC)가 대표의 자질을 보고 벤처기업에 투자하는데 복수의결권으로 능력 있는 대표의 경영권이 튼튼해진다면 투자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벤처캐피탈협회 관계자는 “VC는 사람을 보고 투자한다”며 “경영권이 강화되면 기업 가치가 올라갈 수도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액주주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 시민단체에서는 복수의결권이 오히려 투자 시장을 위축시키고 벤처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분석했다. 복수의결권으로 최대주주 영향력만 커지고 투자자가 집어넣은 자금만큼 경영에 참여할 수 없다면 누가 투자하겠느냐는 것이다.
외부 투자가 줄어들면 최대주주가 견제 없이 방만한 경영을 가능성이 커지고, 다시 외부 투자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생길 수도 있다.
권오인 경실련 경제정책국장은 “국내 벤처기업의 모태펀드 의존도는 높은 편”이라며 “외부 투자자 없이 최대주주가 경영권을 행사한다면 모태펀드로 세금만 낭비되고 기업은 성장하지 못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벤처기업을 시작으로 대기업 등 전체 기업으로 복수의결권 도입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개정안에 따라 상장 후 복수의결권을 가지고 있던 주식이 모두 보통주로 전환되면 최대주주의 경영권이 약화된다”며 “그렇게 되면 경영권 보호를 위해 보통주 전환 규정이 없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대기업 등 상장사들은 자신들에게도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사위에 상정된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은 복수의결권 발행 후 최대 10년간 존속할 수 있고, 상장 후 보통주로 전환할 것을 규정한다.
박상인 교수는 “대기업에 복수의결권이 도입되면 총수일가의 경영권을 강화하는 데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한 번 복수의결권이 도입되면 도미노처럼 기업 전체에 확산될 가능성이 크고, 그러할 경우 시장에 주는 악영향이 크기 때문에 시작 자체를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벤처기업이 상장할 때까지 최대주주가 자금을 확보하면 된다는 주장은 비현실적”이라며 “비상장일 때도 자금 부족으로 경영권 방어를 못했는데 상장 이후 주가가 더 오른 상황에서 주식을 살 여력이 있겠나. 경영권 방어는 항상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복수의결권이 시장 전체에 주는 악영향이 큰데 손쉽게 경영권을 방어하려고 무턱대고 제도를 도입하는게 아니라 기업의 경쟁력 자체를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벤처업계에서는 이러한 주장이 기우라고 일축했다. 최수정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벤처기업에 복수의결권이 도입된다고 대기업까지 확대된다는 보장이 어디있나”라며 “소액주주 보호장치 등은 충분히 있기 때문에 도입 자체를 반대할 게 아니라 남용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