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은 지난달 29일 오후 11시 48분께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아파트 입구 인근에서 남성 두 명이 A 씨를 폭행한 후에 차량에 태워 사라졌다. 근처에 있던 목격자가 즉시 경찰에 신고했고, A 씨의 가족들 또한 A 씨가 귀가하지 않았다고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이후 서울수서경찰서는 납치 차량을 사건 발생 다음 날인 30일에 대전에서 발견했지만, 용의자들은 이미 도주한 상태였다. 차 안에는 혈흔과 함께 납치, 폭행 도구로 사용했던 삽과 테이프 등이 발견됐다.
경찰은 수사 끝에 이들이 경기 성남시로 이동한 것을 파악해 31일 모란역과 수정구 모텔에서 용의자 연 모(30) 씨와 황 모(36) 씨를 붙잡았고, 오후에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이 모(35) 씨를 체포했다.
이들은 A 씨를 살해한 뒤 대전 대청댐 인근에 시신을 암매장했다고 자백했다. 이들은 경부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경기도 용인과 평택을 거쳐 대전으로 향한 뒤 대청댐 인근에서 사체를 유기·암매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진술을 토대로 경찰은 수색작업을 벌여 A 씨의 시신을 발견했다.
경찰 조사 결과 A 씨의 가상화폐를 노린 이 씨가 주도한 청부살인이었음이 드러났다. 진술에 따르면 이 씨가 황 씨에게 청부살인을 의뢰했고, 이에 황 씨는 연 씨에게 빚을 탕감해 주겠다는 대가로 범행을 제안했다고 전해졌다. A 씨를 직접 납치·살해한 황 씨와 연 씨는 A 씨와 일면식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씨는 이들에게 범행 도구도 제공했다.
경찰은 “약물이 담긴 주사기 여러 개를 준비해 건넨 것도 이 씨”라는 진술을 확보했다. 경찰은 해당 약물이 마약류 마취제인 케타민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피해자의 어깨와 다리 등에서 주사기 투약흔이 나온 만큼, 약물이 피해자의 사망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다.
이들은 추적을 피하고자 대포폰과 현금만 사용했고, A 씨를 살해 전 3개월간 미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일부 구간은 도보로 이동하거나 중간에 옷을 구매해 갈아입기도 했다.
경찰은 이들 외에도 공범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추가 혐의자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작했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3일 대청댐 답사 당시 연 씨, 황 씨와 동행했던 B 씨를 추가 피의자로 입건했다.
A 씨 남편은 가상화폐 사업을 하다 투자 사기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현재 구속된 상태다. A 씨 남편 업체에 투자했다가 손해를 본 투자자들이 이 씨에게 범행을 사주하고, 이 씨가 대학 동창인 황 씨에게 범행을 제안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경찰은 사이버 분야 전문인력을 동원해 가상화폐를 중심으로 이들 사이의 금전 거래와 오간 돈의 성격, A 씨가 보유한 자산 규모와 관련 사업, 법적 분쟁 상황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 추가 공범이 확인될 경우 가상화폐 투자 실패에서 비롯한 원한 관계가 청부살인으로 이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수사 중이다.
경찰 조사에서 연 씨는 “처음부터 피해자가 보유한 코인을 빼앗을 목적으로 범행한 것”이라며 “이씨가 범행도구를 지원해줬고 나에게 숙박업소를 잡아줬다”라고 진술했다. 이 씨는 피해자 측과의 관계를 포함한 모든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경찰은 이들에 대한 신상공개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강도살인·시체유기 혐의로 체포된 3인조의 구속 여부는 3일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