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재 국제금융센터 원장 “올해 고금리 충격은 ‘가계부채’…韓경제 최전선 첨병될 것”

입력 2023-04-06 14:54수정 2023-04-06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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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국내 최대 위험은 ‘글로벌 고강도 긴축’ 여파
“통화정책 시차 감안 시 당분간은 국내 하방 압력”
고금리에 따른 비은행 기관 취약 고리 주목해야
‘대출축소→신용위축→경기침체→부실채권 증가’
국내 금리인상 영향은 ‘가계부채’에서 먼저 충격
“대한민국 경제 최전선 지키는 ‘최첨단 첨병(尖兵)’”

▲이용재 국제금융센터 원장이 28일 서울 중구 국제금융센터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시장 대응만 하다 시간이 가버린 것 같습니다.
40년 만의 강력한 통화 긴축으로 글로벌 경기 동력이 꺼진 가운데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도 1%대까지 낮아지는 등
세계 경제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이 우리 경제의 걸림돌입니다.”

이용재 국제금융센터 원장<사진>은 지난해를 돌아보면 아찔하기만 하다. 작년 9월 취임한 지 3일 만에 원·달러 환율이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충격으로 하루 새 15원 넘게 뛰어오르면서 1400원을 돌파했다. 환율이 1400원대를 넘어선 것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3년 6개월여 만에 처음이다. 역대로 봐도 1998년 외환위기와 2009년 금융위기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한 달 뒤에는 레고랜드 발(發) 신용경색이 채권시장을 뒤흔들었고, 11월에는 흥국생명의 5억 달러 규모 영구채 콜옵션(조기 상환권) 미행사로 한국을 향한 해외투자자들의 시선이 얼어붙었다.

그로부터 200여 일이 지났다. 그는 “연말을 넘기고 3월쯤 되면서 대충 큰 흐름에 있어 방향은 잡혔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또 실리콘밸리은행(SVB)을 시작으로 은행 리스크가 터졌다”라며 덤덤히 털어놨다. 국제금융센터는 지난달 중순 SVB 파산 사태가 발생한 이후 매일 같이 ‘SVB 사태 동향 및 해외시각’보고서를 공개하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 넘게 흘렀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의 반응과 정책 여파를 계속해서 주시하기 위해서다. 이 원장은 “해외 금융 시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빨리 국내 시장에 알려서, 혼선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저희의 일”이라고 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 국제금융센터에서 취임 200일을 앞둔 이 원장을 만났다. 1990년 서울대 경영학부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고 행정고시 35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이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에서 국제금융국, 물가정책과장, 국고과장 등을 지냈으며,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이사보좌관,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선임 이코노미스트 등 국제 경험도 두루 갖춘 ‘국제 금융통’이다. 그는 “작년 11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 인상을 할 때부터 크레딧스위스(CS)가 시장의 위험요인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여러 가지 시장 불안이 산적해 있어서 이렇게 빠르게 진행될 것까진 예상치 못했다”라며 “아직도 새로운 위기가 나타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용재 국제금융센터 원장이 28일 서울 중구 국제금융센터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올해 국내 시장의 가장 큰 위험으로는 글로벌 고강도 통화 긴축의 여파를 꼽았다. 그는 “40년 만의 가장 가파른 긴축이었다”라며 “작년 하반기 이후 미국 등 선진국에서 높은 속도로 금리 인상이 이루어졌다는 점과 통화정책의 긴 시차 등을 감안할 때 당분간은 국내 경제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금융센터는 연준이 오는 5월에 한 차례 추가 인상을 단행한 후 연말까지 5.25%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원장은 “최근 은행권 불안으로 연준의 금리 인상 전망이 낮아지기는 했지만, 주요국 인플레이션은 서비스 위주로 근원 물가가 높은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라며 “연준으로서는 높은 수준의 금리를 상당기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이번 은행 리스크가 각국 금융시스템으로 번질 가능성은 제한적이지만, 은행 부문의 불확실성이 세계 경제 전체로 확대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주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미국의 경우 미실현 평가손실 등 재무건전성과 비즈니스 구조가 취약하기 때문에, 느슨한 규제를 받아온 일부 중소은행 등을 중심으로 유동성 리스크가 다시 부각될 수 있다”며 “유럽 은행들의 경우 미실현 손실 우려가 미국보다는 낮지만, CS의 AT1 채권 상각 결정이 유럽 중소은행들의 자금조달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라고 했다.

고금리에 따른 취약 고리가 은행권 이외에 비은행 기관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모기지론과 오토론업체, 연금펀드, 헤지펀드, 사모펀드 등으로 대표되는 비은행 금융권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크게 성장해 전 세계 금융자산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비은행 금융권에 대해 스트레스테스트를 실시한 결과 지난 10년간 부채비율이 크게 상승했고, 유동성 미스매치 등 전통적 은행권과의 높은 연계성에 취약하다고 평가했다. 이 원장은 “금융시스템 불안이 장기화할 경우 ‘대출축소 → 신용위축 → 경기침체 → 부실채권 증가’라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질 수 있다”며 “글로벌 시장이 이러한 악순환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자본 버퍼(완충, buffer)를 쌓고 있는지 여부가 중요한 요소”라고 판단했다.

▲이용재 국제금융센터 원장이 28일 서울 중구 국제금융센터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국내적으로 금리 인상의 영향이 가시화했을 때는 ‘가계부채’에서 가장 먼저 충격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원장은 “가계의 부채상환부담을 높여서 소비 여력을 저하시키고, 나아가 부동산 관련 대출을 부실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시장에서는 가계부채의 대규모 부실화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평가하지만, 취약가구의 수가 늘어나고 부동산 시장 하강 흐름도 이어지고 있다”라며 “기업들도 금리가 높으면 투자가 위축되면서 성장 동력이 약화할 수 있는 부분이 제일 우려스럽다. 이 부분을 지속해서 관찰하려고 한다”라고 밝혔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102.8%로 세계 최고 수준이며, 약 80%가량의 대부분이 변동금리로 금리 인상에 취약하다.

글로벌 긴축 흐름을 역행하는 일본의 ‘나홀로 완화 정책’에 대해서는 “최근 일본 국채금리가 하락하고 있지만, 국채시장 유동성이 크게 악화함에 따라 일본은행(BOJ)이 6월쯤 수익률곡선제어(YCC) 조정에 나설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라며 “다만 최근 글로벌 은행 사태 등으로 금리인하 전망이 대두되면서 BOJ는 인플레이션이 기조적으로 2% 목표에 도달할 것이라는 확신이 생길 경우에나 완화정책을 종료할 것으로 보여 현 기조는 당분간 지속될 수 있다. YCC 조정으로 점진적 통화정책 정상화 전망이 나올 수 있지만, 마이너스 정책금리(NIRP)의 인상은 내년에나 단행될 것”이라고 했다.

올해 국내 성장률은 작년(2.6%)보다도 상당 폭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작년보다는 안정세를 찾고 있지만, 본격적이고 활발한 회복과는 거리가 멀고 성장 위험요인도 여전히 많다”라며 “세계적 투자은행 바클레이스와 해외기관들은 올해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경기침체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기보다는, 누적된 경기 하방압력이 올해 하반기 또는 연말을 전후로 지연되고 있다고 보는 시각도 상당수”라고 우려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최근 우리나라의 올해 GDP 성장률을 1.5%로 제시했다. ADB의 전망치는 다른 국내외 주요 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1.8% △국제통화기금(IMF) 1.7% △한국은행·OECD(경제협력개발기구) 1.6% 등보다 낮은 수준이다. 해외 IB(투자은행)들은 이보다 더 낮은 1.4% 수준을 전망하고 있다.

이 원장은 “우리나라는 소규모 개방경제로 대외 부문의 부정적 영향을 크게 받는다. 내수 또한 경제 재개 효과가 소멸하면서 작년보다 둔화할 것”이라며 “투자 또한 여러 불확실성에 직면해있다. 일부 기업들이 산업 다운 사이클(하강 국면)에도 투자를 유지하려 노력 중이지만 차입 비용 상승 등을 고려하면 향후 실질 투자가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라며 “올해 국내 경제는 상반기 순수출 부진 측면에서 하방 압력이 작용 중으로 내수·투자 둔화에 대해 얼마나 효율적으로 대응하여 실물 경제 타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지에 따라 성과가 좌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반기 반등 요인으로 △글로벌 통화 긴축 기조 완화 △반도체 업황 전환 △중국 생산 회복으로 수출 모멘텀 회복 등을 지목했다.

국제금융센터는 1998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국제금융시장을 밀착 감시하기 위해 1년 뒤 설립됐다. 흔히 ‘탄광의 카나리아’로 비유되곤 한다. 광부들이 질식사고를 막기 위해 가스에 민감한 카나리아를 데리고 갱도에 내려가 위험 징조를 미리 감지하듯이 국제 금융시장의 위기를 조기에 경고한다는 의미에서다. 2020년 2월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나둘 발생하던 시기에 국제 금융시장의 붕괴를 먼저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았다. 이때도 국제금융센터는 조기 경보시스템(EWS)을 발동하며 국내 금융시장에 위기를 알렸다. 이 원장은 “우리는 외환위기 때 해외 국제금융시장 동향에 대해 ‘제대로 몰라서 당했다’라는 반성에 의해 시작된 조직”이라며 “다른 연구기관들처럼 자료 하나 갖고 3~4개월씩 들여다볼 시간은 없지만, 국제 시장에 나오는 이슈들은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모니터링해서 국내 금융기관들이 대응할 수 있게끔 전달하고 있다.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 신속한 보고서가 강점”이라고 말했다.

내년이면 설립 25주년을 맞는 국제금융센터는 올해부터 시장 모니터링은 물론 국제적 위상과 경쟁력 제고에도 힘쓸 예정이다. 기존에는 국내 시장에서 간접적으로 정보를 제공받았다면, 이제는 아시아개발은행(ADB), 아세안과 한 ·중·일 3개국의 거시경제조사기구(AMRO) 등 글로벌 경제정보센터 전문가들과 직접 채널을 구축해 국제금융 시장에 대해 더욱 양질의 정보 접근도를 높이고 국제무대로 협력을 넓혀가겠다는 것이다. 오는 5월 인천 송도에서 개최되는 ‘제56차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에서는 ‘글로벌 통화긴축의 후폭풍’을 주제로 국제컨퍼런스를 개최할 계획이다. 이 원장은 국제금융센터를 한 단어로 정리해달라는 기자의 마지막 요청에 “전통적 의미의 ‘새장 속 카나리아’가 아닌, 이제는 대한민국 경제의 최전선을 지키는 ‘최첨단 첨병(尖兵)’”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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