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의 이 같은 지시 이후 국민의힘은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전기·가스요금, 학교폭력 대책, 간호법·의료법 중재안 등과 관련해 2주 동안 총 9번의 당정협의회를 개최했다. 이와 더불어 당은 정책 강화를 위해 정책위 산하 정책조정위원회를 복원했고, 당정 정책 공조를 위한 채널로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과 대통령실 이관섭 국정기획수석 간에 '핫라인'을 가동하기도 했다.
이처럼 당정협의가 강화됐지만, 정작 '당'의 역할은 아직도 불분명하다. 당정협의에서 '입법'의 역할을 해야할 당은 보이지 않고, 정부의 정책 홍보와 최근 악화한 여론 달래기에만 급급해 보인다. 국민의힘과 정부는 11일 '의료현안 민당정 간담회'를 통해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본회의 강행 처리를 예고한 간호법·의료법안과 관련해 중재안을 제시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간호협회는 '수용 불가' 입장을 밝히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당장 13일 민주당이 강행 처리를 예고한 상황에서 중재안의 의미가 사실상 사라진 것이다.
최근 있었던 전기·가스요금과 관련해서도 당정은 2분기 요금 인상안을 논의했지만,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결정을 잠정 보류했다. 구체적인 요금 인상 방안은 내놓지 못했고, 오히려 한국전력공사와 한국가스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에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며 질책하기에 급급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후속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열린 민당정 간담회에서도 별다른 논의 없이 농림축산식품부의 정책을 그대로 대책으로 발표했다. 당정협의회가 정책을 '협의'하는 회의체는 맞지만, 현안과 관련해 의미 있는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어 사실상 '보여주기식' 협의에 그치고 있는 셈이다.
당정협의는 '양'보다는 '질'에 초점을 둬야 한다. 특히, 용산 대통령실과 정부의 정책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재탕'하기보다도 당이 주도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당과 정부의 수직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수평적인 관계에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의미 있는 결과 없이 빈도만 늘린 당정협의가 계속된다면 '용산 2중대'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