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는 잘못된 결정” 20%p 차로 앞서지만…‘정체성 정치’ 되돌리기엔 갈 길 멀어
유럽통합을 연구해온 필자가 요즘 자주 받는 질문이다. 작년 9월부터 EU 탈퇴, 브렉시트가 잘못된 결정이었다는 영국인들의 응답이 잘된 결정이라는 응답보다 20%포인트 높게 계속 유지되고 있다. 그렇지만 설문조사만 보고 영국이 다시 EU에 가입하리라 결론짓는 것은 속단이다. 브렉시트의 원인과 그동안의 경과를 봐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5~10년 안에 영국의 EU 재가입이 가능할지 가늠할 수 있다. 재가입은 쉽지 않을 것이다.
경제적 합리성에 어긋난 탈퇴 결정
2016년 6월 23일 브렉시트 찬반 국민투표에서 영국 유권자들은 3.8%포인트 차이로 브렉시트를 결정했다. 투표 이전의 마지막 설문조사에서도 최소 오차범위 안에서 EU 잔류가 나오리라는 예상을 뒤엎는 의외의 결과여서 단기적으로 국제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투표 이전의 설문조사에서 영국 유권자들은 브렉시트가 경제에 마이너스가 된다고 대답했지만 EU 탈퇴를 결정했다. 경제적 합리성보다 정체성을 우선했기 때문이다. 대륙과 다름을 강조해온 영국, 유럽통합으로 자국의 주권이 침해됐고, 특히 이민통제를 자유롭게 할 수 없어 브렉시트를 결정했다. 브렉시트라는 구호 아래 반이민과 반이슬람을 외쳐온 극우 민족주의자는 물론이고 EU의 다소 소극적인 난민정책에 실망한 진보주의자들도 하나가 됐다.
2020년 1월 31일 EU를 탈퇴한 영국의 경제는 코로나19와 브렉시트의 겹악재를 만났다. 영국 교역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EU와의 교역이 줄었고 영국으로의 외국인 투자도 감소했다. 6700만 명의 영국 시장이 아니라 여기에 교두보를 두고 EU 시장을 공략하던 외국 기업들이 영국 투자를 줄였다. 가장 큰 교역 지역과의 무역 감소를 만회할 대체시장 개척은 아직 요원하다. 파운드화 약세로 수입 물가가 올랐고 의사와 간호사, 요양보호사 등 인력도 부족하다. 영국이 더 이상 EU 회원국이 아니고 영국으로 일하러 오는 EU 시민들도 환영받지 못한다고 여겨 일하던 사람들 일부가 떠났다. 폴란드나 루마니아 등 영국으로 일하러 오던 많은 사람들도 까다로운 절차 때문에 입국을 꺼린다. 너필드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전문의가 4000여 명 정도, 간호사는 4만7000여 명이 부족하다.
보수당 강경파 “남은 EU법도 없애자”
그런데도 집권 보수당의 강경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아직도 브렉시트가 경제에 이렇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올해 안에 EU법 가운데 영국이 이미 수용했거나 폐기하지 않은 법은 다 없애겠다는 법안 통과를 밀어붙이고 있다. 3700개가 넘는 EU법이 영국 법으로 수용돼 있다. 기업은 물론이고 시민들의 일상생활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기업 등이 충분하게 검토할 시간을 주지 않고 법을 폐기하면 어떻게 되나? 환경단체의 의뢰를 받아 지난달 초 발표된 설문조사에 따르면 68%의 영국 기업이 이런 일방적인 밀어붙이기 법이 더 큰 불확실성을 야기할 것이다. 64%가 이 법이 경제성장을 저해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보수당은 2010년부터 집권해왔다.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단행했고 코로나와 브렉시트로 매우 악화된 경제를 살리기에 안간힘을 써왔지만 역부족이다. 유권자들은 이제 보수당 정권에 지쳐 정권교체를 원한다. 최소 1년 전부터 제1야당인 노동당의 지지도가 보수당보다 20%포인트 정도 앞선다. 지난달 초 설문조사에서는 노동당의 지지율이 22%포인트 높다.
“다시 두 동강?” 노동당 내부도 신중
그렇지만 노동당은 EU 재가입에 대해 매우 신중하다. 기껏해야 EU와 교역을 촉진하기 위해 협상하겠다는 정도다. 노동당 안에서도 브렉시트 지지자들이 제법 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영국을 세대별, 지역별, 계층별로 두 동강을 냈기 때문에 이런 휴화산에 다시 불을 붙일 필요가 없다. 20대의 3분의 2가 EU 잔류를, 60대의 70%가 브렉시트를 지지했다. 잉글랜드가 브렉시트를 주도했고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는 반대했다. 내년 안에 총선이 치러져야 하기에 노동당이 여론조사대로 이긴다면 집권 이후에 점진적으로 EU와의 관계 개선 등에 나설 듯하다.
영국에서 6년 동안 공부하면서 섬나라 사람들에게 실용주의가 몸에 배었다고 느꼈다. 이념에 치우치기보다 냉철하게 이해관계를 따지는 게 영국인의 습성이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후 영국이 EU에 다시 가입하지 않겠냐는 질문도 심심찮게 받았다. “영국 경제가 더 나빠져야 한다. 그래야 영국인들의 실용주의가 드러날 것이다”라고 대답하곤 했다.
올해 영국 경제는 서방선진 7개국(G7) 가운데 최저다. 저성장의 대명사인 이탈리아보다 경제성장률이 떨어진다. 2016~2022년 영국 경제의 성장률은 EU보다 최소 2%포인트 뒤처졌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전에는 영국의 경제성장률이 EU보다 높았다.
정치지도자 교체 “최소 한 세대는…”
1649년 의회파를 이끌어 청교도 혁명을 승리로 이끈 올리버 크롬웰은 공화정을 선포했다. 1660년 왕정복고가 이뤄질 때까지 영국은 단 11년간 역사상 유일하게 공화국이었다. 이런 정치적 급변이 이번에도 가능할까?
2016년 브렉시트가 국민투표로 결정됐을 때 많은 전문가들이 영국의 EU 재가입은 최소 한 세대가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그만큼 국론 분열이 컸기 때문에 이런 게 진정되고 정치지도자들도 교체돼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에 우크라이나 전쟁도 영국의 EU 재가입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EU 회원국의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 “몇 년 안에 우크라이나와 영국이 EU 회원국이 되는 게 내 꿈이다”라는 바람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의 기드온 라크만 국제문제 칼럼니스트는 EU 재가입을 위한 두 번의 국민투표를 제안했다. 노동당이 집권하면 먼저 EU 재가입 협상 개시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치른다. 여기에서 최소 60% 이상은 나와야 노동당이 EU와 재가입 협상을 벌일 명분이 선다. 이후 재가입 협상 결과를 다시 국민투표에 회부한다. 논리적으로는 적확하지만 너무 낙관적인 전망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빠르면 2029년 안에 영국이 다시 EU 회원국이 될 수 있다. 내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집권하면 다음 총선은 2029년이다. 집권 보수당이 내년 선거에서 야당으로 전락한다면 반EU 목소리를 더 높일 것이다. 보수당 내 브렉시트 강경파들은 평생 최고의 업적이라 여기는 브렉시트 번복을 절대로 수수방관할 수 없다. 지난달 영불해협을 통해 불법 입국하는 난민 신청자들을 추방하고 난민으로 받지 않겠다는 강경한 움직임도 지지율 하락 만회와 정체성 정치 때문이다. 보수당이 내년 총선에서도 재집권한다면 EU 재가입은 더 멀어질 것이다.
북아일랜드 주민투표도 재가입 변수
여기에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와의 통합을 묻는 주민투표도 EU 재가입에 변수가 될 것이다. 1998년 4월 체결된 북아일랜드평화협정은 주민들의 의사에 따라 아일랜드와의 통일을 묻는 주민투표가 가능하다고 규정했다. 브렉시트는 잠잠하던 북아일랜드의 정체성을 다시 일깨웠다.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친아일랜드계인 가톨릭 신자 수가 친영계 개신교 숫자를 넘어섰다. 또 아일랜드와의 통일을 내세운 정당 신페인이 제1당이 됐다. 5~10년 안에 주민투표가 치러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영국 유권자들은 이제 EU 재가입을 원한다. 하지만 정치권은 아주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움직인다. 재가입이 정당의 지지율이나 재선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확신하는 한 정치권의 대응은 미온적일 수밖에 없다.
팟캐스트 ‘안쌤의 유로톡’ 제작·진행자, ‘셜록 홈즈 다시 읽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