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분기 국내 벤처투자액이 60% 넘게 꺾인 것으로 나타났다. 펀드결성액은 무려 80% 급감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고금리와 고물가로 자금조달이 쉽지 않았던 데다 올해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 등 악재가 더해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벤처·스타트업 자금지원 등 대책 마련을 고민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올해 1분기 벤처투자액이 8815억 원으로 집계됐다고 17일 밝혔다. 전년 같은 기간(2조2214억 원) 대비 60.3% 감소한 수치다.
2020년 이후 급성장했던 벤처투자 시장은 지난해부터 급격히 얼어붙기 시작했다. 작년 벤처투자 규모는 6조8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11.9% 감소했다. 하반기부터 투자심리가 눈에 띄게 위축했고, 올들어 미국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하면서 투자시장은 급격히 악화했다.
중기부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지속된 실물경기 둔화와 고금리로 자금조달 비용이 증가한 데다 금융시장의 불확실성 확대와 회수시장 부진까지 가세한 영향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업종별로는 ICT서비스와 유통ㆍ서비스, 게임, 바이오ㆍ의료 등의 감소폭이 컸다. ICT서비스가 74.2% 떨어진 1986억 원, 유통ㆍ서비스는77.5% 감소한 1028억 원으로 집계됐다. 바이오ㆍ의료가 63% 급감한 1520억 원, 게임이 73.7% 떨어진 196억 원으로 나타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수요가 감소하면서 성장성이 둔화됐거나, 단기 재무성과가 부재한 기업들이 투자유치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업력 3년 초과 7년 이하 중기 기업들의 자금난이 컸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통계에서 초기기업에 대한 투자는 전년 동기 대비 58.6%, 후기기업 투자는 43.4% 줄어든 반면 중기기업 감소폭(71.1%)은 70%를 넘어섰다. 투자 혹한기로 후속투자 유치가 어려워진 데다 회수 시장 분위기도 불투명해지면서 저평가된 초기기업(업력 3년 이하)에 돈이 몰렸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또 중기 기업보다 단기간 안내 회수가 가능한 후기기업(업력 7년 초과)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기간 펀드결성 규모도 5696억 원으로 미끄러졌다. 전년동기(2조6668억 원) 대비 78.6% 감소한 수치다. 이 중 정책금융은 2077억 원으로 60% 줄어든 반면, 민간부문 출자는 3619억 원으로 83% 추락했다. 정책금융과 민간부문 모두 출자 규모가 대폭 줄었지만 민간부문이 상대적으로 감소폭이 더 컸다. 고금리로 자금조달 어려움이 커지고, 단기 회수 여건이 녹록지 않아지면서 민간 출자자들이 벤처펀드 출자에 대해 보수적으로 접근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정부는 벤처투자가 전세계적으로 위축세인 상황에서 국내 시장은 어느 정도 선방했다는 입장이다. 중기부에 따르면 같은 기간 미국의 글로벌 벤처투자 실적은 55.1%, 이스라엘은 73.6% 감소했다. 특히 미국은 ‘챗GPT’ 서비스 개발사인 오픈AI에 대한 13조 원 규모의 메가딜 2건을 제외하면 사실상 75.1% 줄었다는 설명이다.
다만 중기부는 이같은 상황을 엄중히 보고 있다. 이은청 중기부 벤처정책관은 최근 열린 벤처투자 동향 관련 설명회에서 "금리 등 대외 경제 불확실성과 2021년 이후 크게 상승한 기업가치를 고려할 때 단기간에 투자심리가 급반등할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 않다"며 "(벤처투자 시장을) 엄중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경제가 개선될 만한 불씨가 있어야 투자심리가 회복될 것으로 보면서도 벤처투자 감소폭이 커지는 데 대해선 예의주시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영 중기부 장관은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수단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며 “벤처ㆍ스타트업 자금지원 및 경쟁력 강화 방안 등 관련 생태계 전반을 두텁게 지원할 대책을 곧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