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카이 마코토의 ‘스즈메의 문단속’이 국내 개봉 일본영화 중 최고 흥행 성적을 갈아치우고 있다. 17일까지 누적 관객수 471만 명으로 기존 흥행작 ‘더 퍼스트 슬램덩크’(450만 명)와 차이를 벌이고 있다. 이 영화는 2011년에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을 모티브로 했다. 주인공인 스즈메는 전국을 돌며 ‘미미즈’라는 검붉은 기둥에 의해 발생하는 지진을 막아내고,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한다.
영화가 흥행하면서 다양한 비평들이 쏟아졌는데, 송경원 평론가는 스즈메가 “한 명의 독립된 인격체라기보다는 그렇게 결정된 이야기 속 당위로 존재(한다)”며 “자기 희생에 망설임이 없는, 숭고한 인물”로 묘사되는 캐릭터 형상화 방식을 지적했다. 스즈메의 행동을 이끄는 동인이 영화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스즈메를 “이타적인 인간”으로 규정했다.
이타심(利他心)은 남을 위하는 마음을 말한다. ‘스즈메의 문단속’이 흥행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현실의 인간들이 그만큼 이타적이지 않아서다. 관객들은 영화에서나마 그러한 인간을 만나길 원했고, 신카이 마코토는 ‘지나치게’ 이타적인 스즈메를 통해 관객의 욕망을 해소시켰다. 살짝 허술한 캐릭터 형상화 방식이 오히려 ‘먹힌’ 셈이다.
‘대장동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은 정치인, 법조인, 언론인 등이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직업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타적이어야 한다. 이것이 과도한 요구라면, 적어도 공공의 선(善)을 무너뜨려선 안 된다. 하지만 기자가 대장동 재판을 취재하면서 알게 된 건 이들이 그 누구보다 법과 제도를 도외시하며 이기적으로 행동했다는 사실이다.
지난달 20일 열린 대장동 재판에서 한 핵심 피고인은 휴정 시간에 “CIA 첩보작전을 하는 것 같다”라며 기자가 방청석에 앉아 있음에도 아랑곳없이 낄낄거렸다. 대한민국을 갈등과 분열로 몰아넣은 사건의 당사자에겐 작금의 상황이 흥미로운 첩보영화처럼 다가오는 모양이다. 기자는 그 피고인이 현실과 유리된 이상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현재 법원에서 진행 중인 대장동 재판은 무려 12건이다. 법원 출입 기자들에게 대장동 사건은 ‘늪’으로 불린다. 재판이 하염없이 길어지고, 늘어나면서다. ‘스즈메의 문단속’으로 비유하자면 재앙 그 자체로 묘사되는 미미즈다. 미미즈를 막기 위해 일본 열도를 누볐던 스즈메가 서초동으로 오지 않는 이상 재판은 당분간 더 길어지고,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고 보니 대장동 사건이 영화처럼 느껴지는 건 그 피고인이나 기자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