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상속분 정한 ‘유류분’ 46년 만에 사라질까…헌재 공개변론

입력 2023-05-17 16:32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피상속인의 재산처분 자유제한” vs “사회논의 거쳐 입법정책적 결정돼야”

친딸 놔두고 며느리에게 부동산 증여
직접 설립한 장학재단에 全재산 유증
상속재산 다툼 중 ‘위헌확인’ 헌법소원

고인이 된 유모 씨는 생전에 며느리와 두 손자들에게 부동산을 증여했다. 유 씨가 2017년 10월 사망한 후 유 씨의 친딸들은 2018년 2월 부동산 증여를 받은 피상속인의 며느리와 손자들을 상대로 유류분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며느리와 손자들이 항소심 계속 중 민법 제1114조 후문에 대해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했으나 2020년 4월 기각되자, 그 다음 달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망인 김모 씨는 공익 목적의 장학재단을 설립하고 자신의 전(全) 재산을 장학재단에 유증한 뒤 2019년 5월 사망했다. 이에 김 씨의 자녀들은 2020년 4월 장학재단을 상대로 유류분 반환청구 소송을 냈다. 장학재단은 1심 소송 중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했지만 2021년 2월 기각되자, 곧바로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착석해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이들 두 사건을 병합 심리하기로 결정한 헌법재판소가 17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재 대심판정에서 유류분 제도에 관한 ‘위헌소원’ 사건 공개변론을 열었다. 유류분 제도를 규정한 민법 제1112~1116조 및 제1118조가 심판 대상 조항이다.

‘위헌 확인’을 구하는 헌법소원을 낸 청구인들은 “피상속인의 재산처분 자유는 상속권에 우선한다”며 “유류분 제도는 상속개시 당시 남아있는 잔여 재산만 상속 대상이 된다는 상속 제도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청구인 측 참고인으로 변론에 출석한 현소혜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 유류분 제도는 유류분반환청구권의 사전포기를 절대 금지함으로써 피상속인의 재산처분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비판했다.

현 교수는 “유류분 부족액 상당의 가액을 반환하도록 해도 유류분 제도의 입법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음에도, 유류분의 반환 범위를 규정한 민법 제1115조 제1항은 원물반환을 원칙으로 삼고 있고 판례도 ‘물권적 구성’을 택해 수증자의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꼬집었다.

▲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걸린 헌재 상징. (박일경 기자 ekpark@)

1977년 女權 신장위해 도입…‘故 구하라 사건’ 계기로 개정요구↑

유류분은 상속인인 배우자와 자녀‧부모‧형제자매에게 ‘법정상속분의 2분의 1~3분의 1’을 보장해주는 제도다. 1977년 생긴 유류분 제도는 유산이 아들, 특히 장남 위주로 분배되는 것을 막고 부인과 딸도 받을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여성 권리 향상을 위한 제도였던 셈이다.

하지만 여권(女權) 신장으로 여성이 상속에서 소외되는 일이 많이 사라진데다 산업화와 1~2명 자식으로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당초 법 취지와 어긋난 경우가 자주 발생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9년 발생한 ‘고(故) 구하라 씨 사건’이다. 구 씨가 숨지자 20여 년 전 가출했던 친모가 갑자기 나타나 상속분을 달라며 소송을 걸었다. 자식을 버리고 코빼기도 내밀지 않았던 친모가 염치없게 재산을 요구한다며 공분이 일었지만 법적으론 어쩔 수 없었다. 소송 끝에 구 씨가 남긴 재산의 40%는 친모의 몫이 됐다. 유류분을 요청할 수 있는 상속인을 제한하는 이른바 ‘구하라법’은 20대 국회에서 자동 폐기됐고, 21대 국회에선 아직 계류 중이다.

▲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공개 변론이 열리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법무부 “유류분 수정해야 하나…신중해야”

이해관계인 법무부는 민법 개정에 신중한 입장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시대 변화에 따른 사회 현실에 맞도록 유류분 제도를 수정해야 할 필요성도 일응 인정되지만, 제도 개정은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입법정책적으로 결정돼야 할 사항”이라고 답변했다.

이해관계인 측 참고인 서종희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동상속인에 대해서도 민법 제1114조를 동일하게 적용하게 되면, 공동상속인에 대한 생전증여 중 유류분반환의 대상이 되는 증여의 범위가 지나치게 좁아진다”면서 “이는 결과적으로 유류분 제도를 형해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시대 발전과 가족형태 변화, 평균수명 연장, 남녀평등 실현 등에 비춰 민법상 유류분 제도가 갖는 입법 목적의 정당성이 오늘날에도 인정될 수 있는지가 주요 쟁점”이라고 설명했다. 헌재는 청구인들의 대리인, 이해관계기관 및 참고인들 진술을 들은 이후 위헌 여부를 최종 판단할 계획이다.

박일경 기자 ekpark@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