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상속인의 재산처분 자유제한” vs “사회논의 거쳐 입법정책적 결정돼야”
직접 설립한 장학재단에 全재산 유증
상속재산 다툼 중 ‘위헌확인’ 헌법소원
고인이 된 유모 씨는 생전에 며느리와 두 손자들에게 부동산을 증여했다. 유 씨가 2017년 10월 사망한 후 유 씨의 친딸들은 2018년 2월 부동산 증여를 받은 피상속인의 며느리와 손자들을 상대로 유류분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며느리와 손자들이 항소심 계속 중 민법 제1114조 후문에 대해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했으나 2020년 4월 기각되자, 그 다음 달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망인 김모 씨는 공익 목적의 장학재단을 설립하고 자신의 전(全) 재산을 장학재단에 유증한 뒤 2019년 5월 사망했다. 이에 김 씨의 자녀들은 2020년 4월 장학재단을 상대로 유류분 반환청구 소송을 냈다. 장학재단은 1심 소송 중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했지만 2021년 2월 기각되자, 곧바로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이들 두 사건을 병합 심리하기로 결정한 헌법재판소가 17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재 대심판정에서 유류분 제도에 관한 ‘위헌소원’ 사건 공개변론을 열었다. 유류분 제도를 규정한 민법 제1112~1116조 및 제1118조가 심판 대상 조항이다.
‘위헌 확인’을 구하는 헌법소원을 낸 청구인들은 “피상속인의 재산처분 자유는 상속권에 우선한다”며 “유류분 제도는 상속개시 당시 남아있는 잔여 재산만 상속 대상이 된다는 상속 제도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청구인 측 참고인으로 변론에 출석한 현소혜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 유류분 제도는 유류분반환청구권의 사전포기를 절대 금지함으로써 피상속인의 재산처분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비판했다.
현 교수는 “유류분 부족액 상당의 가액을 반환하도록 해도 유류분 제도의 입법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음에도, 유류분의 반환 범위를 규정한 민법 제1115조 제1항은 원물반환을 원칙으로 삼고 있고 판례도 ‘물권적 구성’을 택해 수증자의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꼬집었다.
유류분은 상속인인 배우자와 자녀‧부모‧형제자매에게 ‘법정상속분의 2분의 1~3분의 1’을 보장해주는 제도다. 1977년 생긴 유류분 제도는 유산이 아들, 특히 장남 위주로 분배되는 것을 막고 부인과 딸도 받을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여성 권리 향상을 위한 제도였던 셈이다.
하지만 여권(女權) 신장으로 여성이 상속에서 소외되는 일이 많이 사라진데다 산업화와 1~2명 자식으로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당초 법 취지와 어긋난 경우가 자주 발생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9년 발생한 ‘고(故) 구하라 씨 사건’이다. 구 씨가 숨지자 20여 년 전 가출했던 친모가 갑자기 나타나 상속분을 달라며 소송을 걸었다. 자식을 버리고 코빼기도 내밀지 않았던 친모가 염치없게 재산을 요구한다며 공분이 일었지만 법적으론 어쩔 수 없었다. 소송 끝에 구 씨가 남긴 재산의 40%는 친모의 몫이 됐다. 유류분을 요청할 수 있는 상속인을 제한하는 이른바 ‘구하라법’은 20대 국회에서 자동 폐기됐고, 21대 국회에선 아직 계류 중이다.
이해관계인 법무부는 민법 개정에 신중한 입장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시대 변화에 따른 사회 현실에 맞도록 유류분 제도를 수정해야 할 필요성도 일응 인정되지만, 제도 개정은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입법정책적으로 결정돼야 할 사항”이라고 답변했다.
이해관계인 측 참고인 서종희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동상속인에 대해서도 민법 제1114조를 동일하게 적용하게 되면, 공동상속인에 대한 생전증여 중 유류분반환의 대상이 되는 증여의 범위가 지나치게 좁아진다”면서 “이는 결과적으로 유류분 제도를 형해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시대 발전과 가족형태 변화, 평균수명 연장, 남녀평등 실현 등에 비춰 민법상 유류분 제도가 갖는 입법 목적의 정당성이 오늘날에도 인정될 수 있는지가 주요 쟁점”이라고 설명했다. 헌재는 청구인들의 대리인, 이해관계기관 및 참고인들 진술을 들은 이후 위헌 여부를 최종 판단할 계획이다.
박일경 기자 ek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