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고발 없이도 사건 진행…검찰, 선제수사
KT와 관계사들의 ‘일감 몰아주기 의혹’ 사건은 통상적인 공정거래 사건과 다른 형태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앞서 처리된 ‘가구업계 입찰 담합’ 사건처럼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 전 검찰이 선제적으로 수사를 시작하고 범위를 확대하는 두 번째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이정섭 부장검사)는 KT와 관계사인 KT텔레캅, KDFS, 관계자들의 공정거래법 위반(거래상지위남용) 등 혐의를 수사하고 있다.
이는 공정위의 고발이 이뤄지기 전에 수사가 먼저 진행된 사건이다. 일반적으로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가 있는 사건은 ‘공정위 전속고발권’에 따라 공정위가 사건을 조사한 뒤 검찰에 고발하는 절차를 거친다. 그러나 검찰은 이번 사건에 대해 선제적으로 수사에 나섰다.
공정위는 지난해 12월 KT와 관계사들의 일감 몰아주기 의혹과 관련해 KT텔레캅에 대한 현장조사에 나선 바 있다. 이후 검찰은 4월 11일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받아 공정위를 대상으로 임의제출 방식의 압수수색을 벌여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이러한 방식의 자료 확보는 통상적으로 이뤄진다고 하지만, 공정위가 고발하지 않고 아직 조사 중인 사건을 검찰이 가져오는 경우는 드물다.
이례적인 선제 수사 방식을 미뤄보면 검찰이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 그 이상으로 사건을 확장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를 중심적으로 살펴보는 공정위와 달리 검찰은 일감을 몰아주게 된 배경과 목적, 자금횡령 정황 등 여러 부분을 파악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만 처리한다면 공정위 고발을 기다렸겠지만 지금의 검찰은 그 너머 전반을 살펴보려는 의도”라며 “검찰이 선제적으로 수사하며 공정위와 서로 돕는 차원”이라고 평가했다.
공정거래 전문가들은 이 사건이 배임의 성격이 짙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시민단체 ‘정의로운사람들’은 고발장을 내면서 KT의 일감 몰아주기뿐 아니라 구현모 전 KT 대표의 형인 구준모 씨에 대한 불법 지원, 사외이사에게 향응 접대 등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앞서 검찰은 ‘2조 원대 가구 입찰담합’ 사건에서도 선제 수사에 나선 바 있다. 담합에 가담한 기업들은 지난해 5월 공정위와 검찰에 동시에 ‘리니언시(자진 신고 시 처벌 감면 제도)’ 신청을 접수했다.
검찰은 공정위의 조사와 고발이 있기 전 리니언시를 바탕으로 선제 수사에 착수했다. 공정위 고발 없이 건설산업기본법 위반 혐의로 검찰이 수사에 나선 첫 사건이다. 이후 공정위는 검찰의 요청에 따라 사건을 고발했고, 이를 받은 검찰은 기업과 관계자들을 기소했다.
공정위의 사건 처리 속도가 더뎌 검찰이 먼저 수사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가구 담합 사건 리니언시를 받은 공정위가 조사를 1년 가까이 끌자 검찰이 수사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번 KT와 관계사들의 사건 역시 공정위가 지난해 12월 현장조사에 나섰지만, 이후 특별한 움직임이 없어 검찰이 압수수색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측은 거래상 지위남용의 경우 다른 공정거래법위반 사건 과 달리 ‘거래 내용의 불공정성’ 자체가 문제되는 사안이기 때문에 경제분석이 필요없어 얼마든지 선수사 후 고발요청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