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신용리스크 확대, ‘투자·고용·소비‘ 발목 잡는다[흔들리는 기업 신용]②

입력 2023-05-22 17:10수정 2023-05-22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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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사 한계기업 비율 (전국경제인연합회)
고강도 긴축에 따른 경기 둔화 여파로 기업들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이 악화하면서 신용등급이 줄하향할 것이란 우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자금조달 환경이 나빠지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이 늘어나면 투자와 고용이 감소하고, 가계소득이 줄며 민간소비 위축으로 이어져 다시 기업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악순환의 고리’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기업실적 ‘3고’ 후폭풍…신용 리스크 커진다=지난해부터 이어진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의 ‘3고’ 충격은 기업 실적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1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코스피 기업(12월 결산법인·연결 기준)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14.70% 감소했고, 올해 1분기 실적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2.75% 급감하며 ‘반 토막’ 났다.

기업 실적 악화는 신용 위험으로 이어진다. 연초 주요 신용평가사들은 경기 침체 리스크로 국내 기업들의 신용등급 하향 압력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경화 나이스신용평가 연구원은 “실적 저하가 신용도의 조정으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글로벌 수요 둔화, 금리 인상 및 유동성 위험, 부동산 경기 하강 및 PF(프로젝트파이낸싱) 부실화 가능성, 인플레이션과 고환율 등 기업을 둘러싼 위험 요인이 어느 때보다 예측 불가하고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기업의 신용도가 부정적인 방향성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기업들의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자금조달 비용이 늘어나면서 재무 부담이 커진다. 한국은행의 ‘2023년 3월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회사채 시장은 3조8000억 원 순상환 상태로 나타난 반면 기업대출은 원자재 가격 상승, 대기업 중심의 수요 지속 등으로 2년 연속 13.4%의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기업 부채비율도 2021년 4분기 80.2%에서 2022년 3분기 84.5%로 확대됐다.

지난 1년간 가파르게 오른 기준금리(0.50%→3.50%)는 기업의 이자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지만, 문제는 한국은행이 연내 금리 인하를 단행할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다. 물가 수준이 여전히 목표치보다 높은 데다 대내외적 불확실성이 여전해서다. 이창용 한은 총재 역시 4월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회견에서 “시장 내에선 올해 중 금리 인하 기대가 형성됐는데, 금통위원 중 많은 분들이 이런 기대가 과도하다고 생각한다”고 선을 그었다.

▲분기별회사채발행만기추이

◇기업 자금조달 악화, 투자·고용·소비 발목=대기업은 그나마 비용을 들여서라도 자금조달에 나설 수 있지만, 몸집이 작고 재무가 불안정한 중소기업은 제2금융권이나 사채 등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최근 SK이노베이션(AA), 포스코퓨처엠(AA-) 등이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흥행몰이를 하는 등 회사채 시장에 점차 온기가 돌고 있지만, 신용등급이 낮은 비우량 회사채에 대한 투자심리는 여전히 갈피를 잡기 어려운 상황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A등급 회사채 미매각률은 26.7%, BBB+등급 이하는 37.9%로 나타났다.

김기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경기 부진과 실적 저하 우려로 비우량 등급인 A등급 회사채에 대한 투자심리가 위축돼 비우량 크레딧 전체가 약세를 보이기보다는 펀더멘털에 따른 종목별 차별화 양상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실적 감소와 신용 위험 등으로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이 늘어나면 기업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제조기업 302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71.0%는 고금리 부담 완화를 위해 비상 긴축 경영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들 기업은 △소모품 등 일반관리비 절약(71.8%) △투자 축소(24.9%) △임금 동결 또는 삭감(11.7%) △희망퇴직·고용 축소 등 인력 감축(9.4%) △공장 가동 및 생산 축소(8.9%) △유휴자산 매각(8.0%) 등을 통해 대응 마련에 나섰다.

벌어들인 돈으로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한계기업(좀비기업)이 속출할 가능성도 크다. 한계기업이란 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이자보상배율이 1을 밑도는 재무가 취약한 기업을 말한다. 국회예산정책처가 KIS밸류서치 자료를 활용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제조업 조사 대상 1542곳중 418곳(27.1%)이 한계기업이었다.

기업활동이 축소되면 그 충격은 가계로 전이된다. 가계소득이 감소하면 민간소비가 줄고, 다시 기업 실적을 악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기업 신용위기, 국가 경제마저 흔든다=기업들의 신용 리스크는 한국 경제 전반의 위기로 번질 공산이 크다. 한국 경제가 수출로 먹고사는 ‘스몰 오픈 이코노미(소규모 개방경제)’ 특성을 갖고 있어서다. 지난해 기준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45% 수준이다. 2021년 수출이 경제성장률(4.1%)의 절반 이상(2.1%포인트)에 기여했다는 한국무역협회의 분석도 있다.

경제 펀더멘털 약화와 함께 시장에 찍힌 ‘낙인 효과’는 글로벌 자금의 이탈을 부추기고, 주식시장을 ‘좀비시장’으로 전락시킨다. 하이투자증권은 우리 경제가 에너지 의존도·반도체 수출 의존도·대중국 수출 의존도가 높은 경제 구조란 낙인 효과가 실물지표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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