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전 쓴 천명관 '고래'...부커상 수상 불발했지만 한국문학 존재감 과시

입력 2023-05-24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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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부커상이 공개한 천명관 작가의 영상 인터뷰. 한국 사회의 최근 20년 변화에 대해 답하고 있다. (부커상 홈페이지)
천명관 작가의 ‘고래’가 영국 부커상의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에 실패했지만, 문학계 최고 영예로 손꼽히는 시상식의 최종후보(쇼트리스트) 6편에 이름을 올리면서 한국 문학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19년 전인 2004년 출간한 소설이 뒤늦은 올해 1월 영국에서 번역됐음에도 곧장 최종후보에 올라섰다는 점이 무엇보다 고무적이다.

부커상은 23일(현지시각) 영국 런던 스카이가든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의 소설 ‘타임 셸터’ (Time Shelter)를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으로 발표했다. 알츠하이머 환자를 대상으로 과거의 10년을 세세하게 재현해 주는 ‘과거 클리닉’ 서비스에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이 찾아들면서 벌어지는 문제적 상황을 묘사한 작품이다.

천명관 작가의 '고래'는 최종 수상작이 되지는 못했지만, ‘타임 셸터’와 함께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 6개 작품에 들면서 한국 문학의 가치를 입증했다.

국내에서 그간 부커상 최종후보에 이름을 올린 작가는 한강, 정보라 두 명뿐이었다. 한강 작가가 2016년 '채식주의자'로 한국 최초로 이 부문 최종후보에 이름을 올렸고, 2년 뒤 '흰'으로 다시 한 번 지명되면서 역사를 썼다. 지난해 정보라 작가가 '저주토끼'로 그 계보를 이었다.

한강, 정보라 작가와 달리 천명관 작가의 ‘고래’는 무려 19년 전 집필한 ‘구작’임에도 뒤늦은 올해 1월 영국에서 번역되면서 곧장 부커상 최종후보에 이름을 올리는 영예를 안게 됐다.

번역은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 구병모 작가의 ‘파괴’ 등을 영어로 옮긴 김지영 번역가가 맡았다.

1900년대 즈음을 배경으로 하는 ‘고래’는 시골에 태어난 여인 금복의 삶을 역동적으로 묘사하는 작품이다. 생선 장수, 항구 노동자, 야쿠자 등을 만나며 사업수완을 발휘하는 금복은 벽돌공장을 세우고 영화관까지 지어 올리는 등 크게 성공하지만, 그 성공은 오래가지 않는다.

부커상이 ‘고래’를 “한국이 전근대에서 후기근대 사회로 빠르게 전환하면서 경험한 변화를 새롭게 조명하는 서사시”라고 정의한 이유다.

천 작가는 지난 20일 공개된 부커상과의 영상 인터뷰에서 “1980년대만 해도 한국 사회는 국민들의 투표권이 없는 군부독재였다. 나도 그때 군대 생활을 했다”면서 “민주화 과정을 통해 사회가 정상화되는 듯했지만, 일제강점기부터 군부독재를 거치는 오랜 시간동안 축적된 모순이 더 심화되는 모습도 보였다”고 설명했다.

‘고래’가 출간된 후로 20년이 지나는 동안 한국 사회는 어떻게 변화했느냐는 질문에는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졌다. 사회 각계각층의 갈등과 혐오가 훨씬 더 강력해졌고 그걸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조장하는 세력도 있다”고도 비판적인 답을 내놨다.

다만 “그럼에도 한국인에게는 뜨거운 역동성이 있기에 앞으로도 얼마든지 큰 변화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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