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5회 미국아카데미시상식에서 7관왕에 오른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팀의 모습. 시상식이 열리기 전 국내 배급사는 "최다 부문 노미네이트 작품 등극!"이라는 표현으로 홍보했다. (로스앤젤레스 AFP, 게티이미지, 연합뉴스)
“에미상 7개 부문 노미네이션!”
미국의 아카데미 시상식이나 에미상처럼 권위 있는 영상콘텐츠 축제에 한국 영화사가 제작ㆍ수입ㆍ배급한 작품이 수상 후보로 지명됐다면, 당연히 널리 알려야 마땅한 홍보 거리일 것이다. 그러나 번번이 ‘노미네이트’, ‘노미네이션’과 같은 영어를 사용해야만 그 가치가 제대로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국내 1000만 관객으로 크게 흥행한 '아바타: 물의 길', 올해 미국 아카데미시상식에서 7관왕에 오른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등이 모두 이런 홍보 문구를 썼다. 미국 현지에서 발표한 후보 지명 원문의 영어 동사 ‘노미네이트’, 명사 ‘노미네이션’을 그대로 활용한 것이다. 해당 시상식의 권위까지 고스란히 옮겨오고 싶은 마케팅 성격이 내심 담긴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의아한 건 백상예술대상이나 대종상영화제와 같은 한국 토종 시상식의 수상 후보 지명 소식을 전할 때도 ‘노미네이트’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력 시상식에는 관습적으로 영어로 된 표현을 사용한다는 인식이 생긴 탓인지, 그럴 연유가 없는 곳에서도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 소식을 받아쓰는 일부 언론의 기사에서 ‘노미네이트 된…’과 같은 외계어가 파생된다는 점은 더욱 공교롭다. 후보로 지명한다는 의미를 담은 영어 동사 ‘노미네이트’(Nominate)에 다시 우리말 동사 ‘되다’를 덧붙인 형태로 문법적인 계보를 찾을 수 없는 표현이다.
이때 ‘후보 지명’이라는 우리말을 사용하면 쓰는 사람도 간편하고, 보는 사람도 이해하기 쉽다. ‘헤어질 결심’이 ‘칸영화제 경쟁부문 후보에 지명됐다’거나 ‘골든글로브시상식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다’고 우리말로 풀어 표현한다고 해서 그 작품의 가치가 절하되는 일이 생기지 않음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