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식품부, 제분업계와 밀가루 가격 안정 논의
제분업계 “검토하겠지만 밀 값 등락 시세에 즉각 반영 어려워”
원재료 가격 하락세만 놓고 가격 판단, “적절치 않다” 비판도
정부가 밀가루 가격 안정 논의를 이유로 제분업계를 소집했다. 라면과 우유에 이어 정부의 가격 인하 압박이 밀가루로 확대됐다. 식품업계에서는 원재료 가격 하락세만 놓고 판단하기엔 적절하지 않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식품업계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는 26일 오후 서울 at센터에서 밀가루 가격 안정 논의를 위한 제분업계 간담회를 진행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대한제분, 삼양사, CJ제일제당 등 한국제분협회 소속 회원사들이 참석했다.
정부는 업계에 국제 밀 가격 동향을 근거로 밀가루 가격 인하를 요청했다. 제분업계는 정부에 밀 외에 제반 비용이 오른 점을 들며 구매 자금 지원 등을 요구했다.
전한영 농식품부 식량정책관은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국제 밀 가격이 조금 내려왔으니 (이를)밀가루 가격에 반영할 수 있도록 검토해 달라고 제분업계에 요청했다”며 “업계도 어려운 점이 있긴 하지만 검토해보겠다고 해서 (답을)기다려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정부의 라면 가격 인하 압박이 제분업계로 확대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라면 업체가 제분업체를 통해 공급받는 가격은 변하지 않았다고 항변한 직후에 농식품부가 제분업계와의 간담회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밀가루를 집어 가격 인하를 요청한 것에 목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전 식량정책관은 “몇개 품목을 특정해서 하는 것은 아니고 국제 가격과 국내 가격 변화가 연동이 안 되는 것들을 찾다 보니 (그렇게)보이는 것”이라면서 “특정 업체를 압박하기 위해 그런 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앞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달 18일 한 방송에 출연해 “라면 가격을 내리라”고 언급했다. 현재 국제 밀 가격이 라면업계가 가격을 올릴 당시보다 50% 안팎으로 내렸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자 라면업계에서는 제분사를 통해 공급받고 있는 소맥분 가격은 변한 게 없고, 현재 밀 가격이 시세에 반영되기까지 최소 6개월이 걸린다며 난색을 표했다.
제분업계 역시 국제 밀 가격이 작년에 비해 떨어진 게 맞지만 밀 값의 등락을 현재 시세에 즉각적으로 반영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가공에 들어가는 전기료, 연료비, 운송비 등이 제품 가격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원재료인 밀 가격이 떨어졌다고 해서 가격 인하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게 제분업계 중론이다. 이는 앞서 라면업계의 주장과 유사하다.
한 제분업계 관계자는 “B2B의 경우 업체별로 별도 계약을 하고, 사전에 이뤄진 계약대로 납품 가격이 결정되기 때문에 B2C처럼 가격이 수시로 바뀌지 않는다”면서 “가격은 전기료, 인건비, 물류비 등 여러 영향을 받기 때문에 단순히 밀 가격만 가지고 (가격 인하를)논하기는 어렵다”고 토로했다.
정부의 전방위적인 가격 인하 압박에 식품업계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우유와 유제품 업계도 비슷한 상황이다. 이날 제분업계 간담회에 앞서 정부는 최근 우유의 원료인 원유 가격 인상에 따른 우유·유제품 가격 인상에도 제동을 걸었다.
농식품부는 이달 20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원유 가격 인상이 가공식품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우윳값 상승이 전체 물가 인상을 불러오는 이른바 밀크플레이션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를 두고 관련 업계에서는 정부가 가격을 올리지 말라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준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한 유업계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제조사 입장에서 제품 가격 인상을 검토할 수 밖에 없다”며 토로했다.
한편 정부의 식품업체에 대한 제품 가격 통제 움직임이 이어지자 선제적으로 가격 인상에 나서는 업체들도 잇따르고 있다. 식품업계에 따르면 내달 1일부터 CU·GS25·세븐일레븐·이마트24에서 판매하는 음료와 아이스크림, 안주류, 통조림 일부 제품 가격이 최대 25% 오른다. 제조사들이 원재료 가격 상승을 이유로 공급가를 인상한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