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 값 내렸다고 라면값 인하?…제반 비용 무시한 처사 비판

입력 2023-06-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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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시장 개입 과해” 비판도 [탐욕 억제책인가, 新관치인가]

제분·라면·제과·주류업체 정부에 백기투항
편의점 업체들도 가격 인상 보류
정부의 시장 개입, 노골적…부총리까지 가격 낮추라 압박

▲28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라면이 진열되어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정부의 강도 높은 가격 인하 압박에 결국 제분업체, 라면업체, 제과업체, 주류업체가 백기투항했다. 정부의 요구가 제반 비용을 무시한 무리한 처사라는 비판에 더해 자율에 맡겨야하는 시장에 정부가 개입하는 수준이 과하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29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최근 라면업계 1위 농심의 가격 인하 발표를 시작으로 오뚜기, 삼양식품, 팔도 등이 가격 인하 대열에 합류했다. 이어 가격 인하 바람은 롯데웰푸드, 해태제과 등 제과업계로 퍼졌고 SPC그룹은 파리바게뜨와 삼립 빵 가격을 인하하기로 결정했다.

식품업체의 가격 인하는 유통업계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날 CU, GS25 등 편의점 4사는 내달 1일부터 적용할 롯데웰푸드의 아이스크림 가격 인상을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정부의 가격 인하 압박에 식품업계 내부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정부는 국제 밀 가격 하락세를 식품 가격 인하 근거로 들었는데 이를 두고 제반 비용을 반영하지 않은 주장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식품 가격을 결정하는 데 반영되는 요인은 밀가루뿐만 아니라 팜유, 설탕, 인건비, 물류비, 가스·전기료 등 다양하기 때문에 밀 가격만 떨어졌다고 해서 제품 가격을 낮출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게 식품업계의 중론이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식품 가격에는 여러 가격 결정 요인들이 반영된다”면서 “라면을 예로 들면 스프, 팜유를 비롯해 생산·운반에 들어가는 비용도 드는 데 밀 가격만 낮아졌다고 가격을 낮추라고 하는 건 과하다. 밀만 원재료가 아니지 않느냐”고 토로했다.

실제로 국내 주요 라면업체의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농심이 포장재 등 부재료를 매입한 금액은 전년 동기 대비 10.48% 증가했고 오뚜기의 설탕 매입 비용은 1년 전과 비교해 14.5% 상승했다. 삼양식품의 1분기 유지 매입가 역시 1년 전에 비해서 5.9% 올랐다.

업계에서는 시장에 정부가 개입하는 수위도 점차 노골적으로 변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간 역대 정부에서도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가 업계를 불러 간담회를 해온 적 있어도 경제부총리가 특정 상품을 콕 찍어서 가격을 내리라고 지시한 경우는 없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 처음 식품업계 간담회가 열린 건 지난해 9월이다. 식품 물가가 상승하자 농식품부는 식품업체 임원들을 불러 부당한 가격 인상 자제를 요구했다.

정부의 식품업체 압박은 올해 들어 더 심해졌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해 2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세금이 올랐다고 주류 가격을 그만큼 올려야 되느냐”고 했다. 추 부총리의 발언은 주류세 인상 전에 나온 것인데 여기에 기획재정부, 국세청이 주류 가격 인상 요인 등을 조사하겠다고 하자 주류업체는 부담하는 세금이 늘었음에도 가격 인상 결정을 미뤘다.

업계 관계자는 “주정도 올랐고 공병도 오른 상황이라 가격 인상 요인은 너무도 많다”며 “다만 정부에서 저렇게 얘기하는데 올릴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추 부총리의 시선은 주류에서 멈추지 않고 라면으로 옮겨갔다. 추 부총리는 이달 한 방송에서 “라면 가격을 내리라”고 발언했다.

이후 농식품부는 제분업계와 간담회를 갖고 제분업체가 라면제조사에게 공급하는 밀가루 가격을 낮추도록 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정부가 라면 가격을 낮추기 위해 제분업계의 팔을 비튼 것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부총리까지 나서서 특정 상품 가격을 낮추라고 말한 것을 두고 정부의 시장 개입이 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이렇게 말한 적도 사실 없었다”면서 “농식품부에서 간담회하는 거는 그럴 수 있다고 해도 경제부총리까지 나서서, 특정 제품을 콕 찍어서 가격을 낮추라고 하는 건 이례적”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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