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감소 없다면 불법파업 손해액서 제외해야”
입법영역 ‘노란봉투법’ 법리로 옹호한단 비판에
“기업의 입증책임과 무관…판결 이해 못했다” 직격
불법 파업으로 조업이 중단돼 생산 차질이 빚어졌더라도 매출 감소까지 이르지 않았다면 ‘고정비용’ 상당 손해를 조합원이 갚지 않아도 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또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9일 현대자동차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금속노동조합 비정규직지회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3건을 일제히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
현대차는 2012년 8월과 11월‧12월에 벌어진 공장 점거로 인한 피해액 5억4000만 원을 노조원들과 노조를 상대로 청구했다. 원심 재판부는 이 중 약 4억4000만 원의 손해배상금을 인정했다. 현대차는 노조원 개인을 상대로 한 청구는 중도 취하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현대차 쟁의행위 손해배상 관련 세 사건은 모두 ‘고정비용’ 상당 손해를 인정한 원심의 판단 부분에 법리오해 등의 잘못이 있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앞서 15일 현대차가 노조원 5명을 상대로 제기한 다른 파업 손해배상 사건의 상고심에서 내놓은 손해액 산정에 관한 판단과 같다.
불법 쟁의행위에 따라 생산량이 줄었더라도 이것이 매출 감소로 연결되지 않았다는 점이 증명되면 손해액 산정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법리를 대법원이 재확인한 것이다.
이 사건은 당초 손해배상 책임을 가담 정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제한하는 ‘노란봉투법’ 유사 쟁점으로 전원합의체에 회부됐다가 다시 소부로 내려왔다. 이후 고정비와 관련한 손해배상액 인정에 대해 대법원이 이 같은 새로운 법리를 내놨다.
그동안 법원은 ‘생산 감소가 매출 감소로 이어졌을 것’이라는 추정을 전제로 손해액을 계산하면서 업체가 낸 임차료 등 고정비용을 포함해왔다.
대법원은 ‘매출이 감소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간접적으로라도 증명된다면 업체의 고정비용을 쟁의행위에 따른 손해에 포함할 수 없다고 봤다. 대법원은 “자동차와 같이 예약방식으로 판매되거나 제조업체가 시장지배적 지위에 있다면 생산이 다소 지연돼도 매출 감소로 직결되지 않을 개연성이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부족 생산량이 만회됐는지를 심리‧판단하지 않고 피고(노조원)들의 생산량 회복 주장을 배척한 것은 잘못이라며 원심 판결 중 피고들 패소 부분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의 이런 판결을 두고 입법으로 해결해야 할 ‘노란봉투법’을 법리로 옹호한다는 비판이 여당과 재계를 중심으로 거세게 일자, 대법원은 19일 김상환 법원행정처장(대법관) 명의 입장문을 통해 “이번 판결은 기업에게 새로운 입증 책임을 지우거나 더 무거운 입증 책임을 지우는 것과 무관하다”며 “손해배상 청구를 봉쇄하는 효과가 있다거나 개인별로 손해를 입증하게 됐다는 주장은 판결을 정확하게 이해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박일경 기자 ek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