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마레지구에 위치한 ‘피카소 미술관’이 이 같은 원칙에 부합하는 대표 사례로 손꼽힌다. 1973년 파블로 피카소가 사망하자 유족은 1960년대 도입된 관련법에 의거해 회화, 조각, 부조, 도자기, 드로잉, 콜라주, 판화, 자필 원고 등으로 거액의 상속세를 대신 납부했다.
이렇게 설립된 ‘피카소 미술관’ 덕분에 프랑스 정부는 높은 가치를 지닌 피카소 작품 3500여 점의 해외 유출과 분산을 막을 수 있었고, 시민은 귀중한 미술품을 보다 손쉽게 향유할 수 있게 됐다.
양현미 상명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 교수는 해당 사례를 언급하며 “프랑스의 경우 루브르박물관이나 퐁피두센터에서 한 해 예산으로 구매할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비싸고 유명한 작품 정도는 돼야 물납 신청을 받아준다”고 강조했다.
양 교수는 “최초로 물납을 허용한 미술품도 교과서에 나올 정도로 유명한 ‘디드로의 초상’이었다”면서 “국내 사례로 들자면 고 이건희 회장이 소장했던 ‘인왕재색도’ 정도 급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도가 활성화된 영국 역시 보수적으로 물납을 허용하는 건 마찬가지다. 영국예술위원회(Arts Council England)가 발간한 ‘2021-2022 미술품 물납제 현황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한 해 동안 물납 허가를 받은 미술품은 34건으로 많지 않다.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최근 5년간 평균 물납 허용 건수도 평균 30건을 다소 웃도는 수준이다.
영국 정부가 미술품 물납자에게 상속세의 25%를 감면해 줄 수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물납이 허가되는 작품의 가치가 워낙 탁월한 까닭에 금전적인 가치를 재어보면 도리어 국고에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발간한 ‘상속세 미술품 물납제도 도입을 위한 입법론적 검토’에 따르면 영국에서 2009년부터 2019년까지 10년간 부과된 상속세액은 2억3500만 파운드(한화 약 3930억 원)다.
반면 물납제를 통해 국가가 소유하게 된 미술품 등 유물의 가치는 3억7800 파운드(약 6322억 원)로 1억4300만 파운드(한화 약 2391억 원)나 높다. “국가 재정적인 측면에서도 효과적이다”는 분석이 나온 이유다.
양 교수는 “국가가 일단 물납을 허가하면 그 뒤에는 국립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통해 공개하고 보존까지 해야 하는 비용까지 든다”는 점도 짚었다.
또 “그 가치가 굉장히 높은 작품만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우리나라에서는 추상화로 유명한 원로 작가분들이나 유력 컬렉터가 돌아가실 경우 물납 제도를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