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임대 주택은 서민들의 주거사다리이자 디딤돌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이미지가 좋지 않은 것 역시 사실이다. 주로 저소득층이 사는 곳이라는 낙인이 찍혀서다. 미국과 프랑스 등 주요 해외 국가에서는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주택 바우처, 소셜믹스 등 여러 제도를 강구하고 있다.
4일 본지 취재 결과 우리나라와 경제체제가 비슷한 미국은 대규모 공공임대주택 건설 대신 주택바우처 지급 정책 중심으로 전환했다. 바우처 지급을 통해 자유로운 주거 선택권을 보장함으로써 기존 공공임대주택이 가지고 있던 낡고, 밀집적인 이미지를 벗겨내겠다는 전략이다.
미국은 1960년대부터 10년간 2600만 가구 규모로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했다. 당시 미국의 공공임대주택은 우리나라처럼 고층에 밀집한 형태였다. 자연스럽게 저소득층이 사는 곳이라는 낙인과 함께 슬럼화 문제를 낳았다.
이에 미국 정부는 바우처 지급을 통해 원하는 곳에 살 수 있도록 선택권을 주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 임대료 감당이 어려운 저소득층에게 소득의 30%만 임대료로 지출하게 하고 나머지 임대료 차액은 정부가 현금으로 지원해주는 방식이다. 주택바우처 제도를 통해 낙인 문제는 점점 해결돼 가고 있다.
프랑스 국민들은 사회주택(공공임대주택)에 사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오히려 대기명부를 쓰고 기다려야 할 만큼 인기다. 가난한 사람부터 중산층까지 다양한 계층이 섞여 사는 소셜믹스가 잘 정착돼 사회주택에 산다고 낙인이나 차별도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프랑스 사회주택은 국민 70%가 입주 권리를 가지고 파리의 경우 전체 주택 중 사회주택 비율이 23.4%을 차지할 만큼 보편적인 주거방식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살인적인 집값으로 유명한 파리에서 사회주택의 저렴한 임대료는 큰 장점이다. 소득 수준에 따라 임대료를 달리 받는데 파리시의 경우 사회주택은 같은 면적의 민간 아파트 월 임대료보다 절반가량 저렴하다.
프랑스의 주거 정책도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과거 도시 외곽에 대규모 사회주택 단지를 세웠지만 슬럼화와 사회적 차별 문제로 실패를 겪었다. 문제가 커지자 지역 할당제, 소셜믹스 지구 제도를 도입하면서, 대단지 중심에서 도시 곳곳에 사회주택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개발이나 재생 사업 시 사회주택을 최소 30% 이상 공급하도록 하고 있다. 수도인 파리의 꼬뮌에서는 2025년까지 사회주택을 25% 이상 지어야한다. 꼬뮌은 우리나라로 치면 동 단위인 가장 작은 행정자치구역을 뜻한다. 도시의 가장 작은 단위까지 골고루 사회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의도다. 프랑스 사회주택 비율은 높은 수준이지만 여전히 공급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프랑스는 2025년까지 전국 사회주택 비율을 전체 주택의 25%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꾸준한 공급, 저렴한 임대료, 소셜믹스를 통해 시민의 주거 안정성과 도시의 공공성을 높여가고 있다.
10년째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이름을 올린 오스트리아의 사회주택은 전체 주택 중 24%를 차지한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사는 수도 빈에는 사회주택이 무려 50%를 차지한다. 거주 기간도 평균 20년으로 오랫동안 거주할 수 있다.
이렇게 '주택=공공재'라는 인식은 자연스럽게 저렴한 임대료 책정으로 이어졌다. 이를 위해 국가는 건설 사업 주체인 비영리 주택협회에 싼 값에 땅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장기간 저리로 이용할 수 있는 건설비용 보조금 등 여러 금융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지어진 사회주택은 임대료를 30% 낮추는 효과를 가져왔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공공임대 주택 비중이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한다.
이상영 명지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공공임대 비중은 전체 주택의 8% 정도"라며 "정부 계획상으로 4~5년 후 목표치가 10%인데, 여전히 임차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건 10만 가구가 안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민아 토지주택연구원 수석연구원은 “해외 주거복지 정책 사례처럼 단지의 유형과 세대 내 소득 계층 등 입주자들의 구성원들 다양화해 소셜믹스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며 “다만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공적주택이 비율이 많이 늘어나야 한다”고 했다. 이어 “단순히 집만 많이 지어서 주거안정을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주거 바우처 등 다양한 주거지원 프로그램도 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